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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제이쿠 Nov 18. 2020

엄마의 언어

엄마를 마중 나간 얼마 전. 갑자기 비가 내렸다.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 탔는데, 기사님이 한 말씀을 하시더라. "김치가 있으면 트렁크에 넣어야지 가지고 타면 나중에 손님들이 냄새난다고 뭐라고 해요."


예상치 못한 소리에 나는 살짝 당황해서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고 넘겼다(이런 손님 저런 손님도 있는 거지라며 어떻게 좋은 냄새나는 사람만 타나 이런 생각이 스치면서). 잠시 침묵이 흐르고, 엄마가 귤과 감을 꺼내 기사님께 드리더니 "이거 냄새 환기하실 겸 드세요. 제주도에서 온 귤이에요." 라며 그냥 오려다가 직접 심은 배추랑 무가 너무 맛있어서 아침에 급하게 조금 담가서 가지고 왔다고 덧붙이질 않나.


 "비가 갑자기 내려서 생각을 못했네요. 죄송해요."

엄마의 마지막 이 한마디 때문에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엄마한테 잔소리를 하게 됐다.


뭐가 죄송하냐고, 기사님은 아무 반응이 없는데 왜 이렇게 아무에게나 친절하게 대하냐고 그랬더니. "기사님 입장에선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더라. 나는 기분 좋게 온 사람에게 애먼 소리를 한 기사님의 태도가 썩 내키지 않았는데 말이다. 엄마가 아침부터 바쁜 시간 쪼개 딸 맛 보여주려고 애썼을 생각 하니 그 말 한마디에 엄마의 즐거웠던 마음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기사님의 언어가 "딸 집에 온다고 김치 담가 오셨나 봐요"라고 표현됐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의 언어 때문에 반성이 되더라. 타인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 기분 나쁜 상황으로만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 호의의 대상은 이웃 모두가 돼야 한다는 것.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든 나만의 언어로 진짜 나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딸답게 친절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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