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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제이쿠 Dec 27. 2020

"언니 하기 힘들지?"

얼마 전 외할머니 생신이라 전화를 드렸다. 축하를 드리려고, 안부를 여쭈려고 한 전화였는데, 할머니께서 "언니 하기 힘들지?"라며 예상치 못한 말씀을 건네셨다. 그럴 일도 딱히 없지만 살면서 처음 듣는 얘기에 마음이 울컥했다.


친할머니도 그렇고 부모님을 떠나 동생들과 한 집에 살다 보니 내가 보호자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우리 형제들이 다들 독립적인 성향이 강해서 각자 알아서 잘 살고 있지만, 그래도 언니는 언니로서의 역할이 있는 것 같다. 문제는 가끔 그게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는 것.


며칠 전, 엄마랑 통화하는데 그러더라. "옛날에 니가 엄마 나 장녀 안 할래" 그랬다고. 왜냐면, 어릴 적에 아빠가 하도 동생들한테 뭐라고 하지 말라고 해서 나는 동생들이 내 새 옷을 몰래 입고 나가도 화 한 번 못 냈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아빠에게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조금 더 그 시절 이야기를 하자면, 아빠가 늘 물건을 아까워하지 말라고 얘기 했다. 그런데 내가 "나한테 하나밖에 없는 건데, 어떻게 아깝지 않냐고, 동생이 쓰면 나는 없는데 또 사줄 거냐고" 따져 물었더랬다. 그랬더니 아빠가 왜 또 안 사줄 거라고 생각하냐고 하더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내어주라고 한 성경 말씀을 생각해보라고. 부모는 아까운 그것까지 내어준 마음이 예뻐서 더 큰 것을 주고 싶다고. 그땐 그 얘기를 반신반의하면서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엄격한 교육 때문인지 나는 동생들에게 욕심을 부리거나 가진 것을 내어주는 것에 아까워하지는 않는다. 언니라는 자리는 늘 그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계속 되뇌인 것 같다. (그렇다해도 화가 나거나 이해 못할 상황이 발생하긴 하더라. 그때마다 언니라서 더 이해하지 못한 것에 자책하게 되고, 그 불편한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다.)


때로는 누가 이런 마음을 알까 싶지만, 누군가는 그 마음의 무게를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넉넉히 위로 받은 그 마음으로 또 베풀 용기가 생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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