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짧게나마 할머니 댁엘 다녀왔다.
사실, 할머니는 연로하신 것도 있지만 약간의 치매 증상 때문에 명절 인지도 모르셨다. 부모님이 말씀을 드려도 금세 잊어버리신다고 했다.
음식 솜씨 좋던 할머니가 요리방법을 잊어버려 음식을 할 수가 없고, 아궁에 물을 끓여 나물을 삶으니 "제사 안 지낸다고 하더니 왜 준비를 하냐"라고 하시더라. 그건 기억이 떠오르신 듯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온 집안 식구 먹을 나물을 삶던 명절의 기억 말이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으시다.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때론 열심히 산 삶의 대가가 슬픔과 아픔이냐고 반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 할머니의 정직한 삶을 알고, 그 아픔을 곁에서 함께할 수 있는 자녀들이 있고, 그 삶을 잊지 않으려는 후손들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하고.
결코 삶의 대가는 건강이나 재물로 측량할 수도, 눈으로 판단할 수도 없다는 것. 이 모든 과정에서 더 사랑하고, 기도하고, 서로를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생으로 성숙하게 하시는 것만으로도 큰 복임을.
"하나님, 할머니의 남은 인생의 여정이 평안으로 가득케 해주세요.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고 사랑한 기억만 남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