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특히 겨울이면 바닥의 온기가 식지 않게 우리 집엔 늘 이불이 깔려 있었다. 이불속에 하반신을 넣고 상체만 내놓은 채 텔레비전을 보거나, 귤을 까먹거나, 삶은 고구마를 먹었다.
가끔 친구들이 와도 다르지 않았다. 이불속에서 발을 부딪혀가며 전기놀이를 했고, 조금 커서는 용돈을 모아 과자를 몇 봉지씩 사다 늘어놓고 나눠 먹었다.
그땐 위생 같은 건 생각하지 못했다. 이불에 떨어진 부스러기는 털면 된다고 생각했고, 발을 씻었는지 아닌지 신경 쓰는 아이는 없었다. 우리 모두, 한 이불속에 발을 집어넣고 꼼지락거리며 놀았다. 그러다 누군가 방귀라도 뀌면 난리가 났다.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듯 야유를 퍼붓고, 범인은 오히려 가장 호들갑을 떨면서 냄새를 퍼뜨리곤 했다.
그렇게 우리의 이불은 작은 세계였다. 일본의 고다츠처럼, 겨울이면 그 안으로 모여 하루를 나누고, 밤을 지새우던 시간이었다. 이불 안에서 나눴던 얘기들, 그 어설프고 유치한 농담들마저 이상하게 따뜻하게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엔, 모여 밤을 함께 보내는 게 당연한 듯한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20대 초반, 다들 대학생일 때는 이런 밤들이 더 신이 났었다.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약속 장소에서 하나씩, 둘씩 나타나면 서로의 패션과 외모를 두고 장난스러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곤 했다.
객지에서 만난 사람들한테 이야기 못한 사연들을 풀면서 서로 깔깔 웃고, 편을 들어주면서 위로를 했다. 무언가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던 사이. 그런 사이가, 그 시절엔 너무 당연해서 고마운 줄도 몰랐다.
요즘은 바닥에 앉는 일조차 없어졌다. 나이가 들며 허리가 불편해졌고, 이불을 펴고 앉던 습관도 오래전에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그때 한 이불을 덮고 지내던 친구들과도 만나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고다츠도,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겨울의 찬 기운을 피해 이불속으로 들어갈 때면—아직도 그 시절의 따뜻한 공기를 떠올린다. 함께 있던 온기, 말없이 전해지던 마음들.
그건 정말, 추울 틈이 없던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