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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Mar 13. 2022

30대 부부의 토요일 밤 이야기

부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자주 다르다.

매일 글을 쓰기로 나 자신과 약속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막상 글쓰기를 시작하면 즐거웠으나 의자에 앉기 전까지는 의무감과 피로감에 고통스러웠다. 불과 일주일도 되기 전에 설렘이 고통으로 바뀌어버리다니. 사실 명분이 없지는 않다. 월~목(금요일은 백신 접종으로 쉬었다)간 밤 11시 넘어서 퇴근하고 1시 30분에 퇴근한 적도 있다. 아무리 늦어도 밤 8시 전에 퇴근하는 평범한 공대식 회사생활에 익숙한 내게 이런 상황이 좀 가혹하기는 했다. 그래, 오늘이 주말이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글을 적어 본다.


오늘은 아내가 요가 지도자 과정 수강을 시작한 날이었다. 나는 와이프에게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데리러 가겠다고 말했고, 겸사겸사 오랜만에 서울 데이트도 하기로 했다. 해가 바뀐  얼마 안됐지만, 2022년은 우리에게 특별했다. 와이프는  해의 강사 생활 끝에 본인의 이름을 걸고 광화문에서 필라테스 센터를 오픈했고, 나도 입사 7 만에 엔지니어 업무를 마치고  부서에서 어문계열 업무를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새로운 시작과도 같았다.


자축할 겸 용산 근처의 근사한 레스토랑을 검색하다가, 메종 한남을 발견했다. 이곳은 예전 외교관의 자택으로 쓰이던 곳을 개조해서 만든 곳인데 감각적인 내부 인테리어와 통유리창을 통한 한강 뷰가 아주 근사했다.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당일에 예약하려다 보니 일반 테이블은 풀 부킹이라 특별 예약석(?)만 남아있었는데, 30만 원 이상 주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2인 방문 예정이라 그 금액은 다소 부담스럽다고 말했고, 매니저님은 그렇다면 알아보고 다시 알려주겠다 했다. 잠시 후 미니멈 20만 원까지 가능하겠다는 기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예약을 진행했다. 캐치 테이블 어플상 예약이 만석이어서 전화를 했던 건데 역시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은 네고가 된다.(이건 비밀인데 내 독자님들께만 알려드린다. 앞으로도 신기한 네고 경험들을 많이 써볼 예정.)


수업이 끝날 즈음 요가원 앞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내의 환한 모습을 보니 즐거웠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도 교육을 받는 만큼 말도  하게 피곤했을 텐데 내가 서울까지 와서 기다려주니 행복했을 테지, 와이프를 행복하게 하는  내게도 정말 행복한 일이다.  행복감이 전해지니까. 아내의 작고 야무진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우리가  곳에 대해 말했다. 아내는 맨투맨을 입고 가도 되나 했지만, 그에 대비해서 어깨에 두를만한 블레이져를 챙겨왔다. 막상 도착해보니 기품 있는 레스토랑 입구와 멋진 화장실을 제외하면 테이블 쪽에는 캐주얼한 분위기여서 크게 위화감이 드는 공간은 아니었다. 미니멈 오더가 있던 만큼 우리는 앙트레부터 디저트까지 먹고 싶은 메뉴를 골고루  시킬  있었다. 와이프와 이렇게 넉넉하게 음식을 주문한  얼마만인지? 신혼여행 이후로 거의 처음인  같다. 관심이 생기는 음식을 전부 주문할 마음이었기에 메뉴판을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주문  적당한 타이밍에 순서대로 음식들이 도착했고 다채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있었다. 메뉴를 하나 하나 먹으며 다음엔 뭐가 나올지 기대하는  순간. 종종 느낄  있는  하나의 재미다.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채끝 스테이크였다. 지금까지 우리의 스테이크 1순위는 LA에서 먹었던 드라이에이징 뭐시깽이였는데.  집이  맛있었다. 씹을  느껴지는 두툼한 덩어리의 질감, 적당한 담백함, 그리고  지방의 풍미 넘치는 고소함까지…  멋진 공간과 음식, 토요일 저녁 분위기라는 3박자에 우리는 많이 들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발렛 맡겨놓은 차를 찾을 때, 나는 조수석 쪽으로 이동해서 차 문을 열어주었고 아내가 탑승한 후 문을 닫았다. 별 것 아닌 행동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이 정도 매너는 서로를 기분 좋게 한다. 주차장에는 람보르기니도 있었지만 남부럽지 않은 밤이었다.(포르셰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생각나는 걸 보면 아마 부럽긴 했었던 거 같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조용한 클래식을 틀고 푹 자라고 배려해주었다. 쌔근쌔근(?코고..ㄹ이..?) 잠든 아내의 모습을 보니 나 꽤 잘한 것 같았다. 따뜻한 밤이었다.

좌, LA : 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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