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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Sep 04. 2022

입원 날 저녁 일기

갑상선 반절제 D-1

지금 막 입원 수속을 마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병실은 1인실로 예약했다. 1박에 32만 원으로 꽤 비싸긴 했지만 퇴원까지 단 3박에 불과하므로 이 정도 투자는 충분히 할 만하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할 때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다. 1인실을 사용하면 일단 넓어서 환자와 보호자 모두 편하게 지낼 수 있고, 타인의 코골이 또는 잠꼬대와 같은 치명적 리스크를  완전 봉쇄할 수 있다.(간혹 유튜브를 이어폰 없이 듣는 넘도 있었다)  쾌적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서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면,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입원 당일인 오늘까지 내적 갈등이 있었다. 마치 새끼발가락의 티눈처럼, 잘 지내다가도 문득 곧 수술해야 되는구나 생각이 들 때면 속상했다. 수술 일정이 다가오니 하나, 둘 주위 사람에게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여러 반응이 있었다.


수술을 앞둔 사람에게 이야기할 땐 “괜찮아, 잘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는 말을 두괄식으로 건네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자의 입장에서는 위로한답시고 건넨 말이지만(당연히 그랬겠지),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 전공이 아닌 이상)이런 말을 내뱉는 건 무책임하다고 느껴졌다. 대면 상태에서는 표정과 어깨를 감싸주는 행동 등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지만, 카톡 단 한 줄로 그런 말을 당했을 땐 불쾌했다.


“네 마음은 어때?”라는 말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괜찮을 거야. 는 일방적이지만 괜찮니? 는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해 준 문장이기 때문인 것 같다. 신기하게도 이 말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가 아닌 내 주위 사람, 즉 회사 동료들에게서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옆자리에서 근무하는 친한 후배는 병가 전 마지막 근무 날에 내게 브라질넛과 피칸을 건네며 “갑상선에 견과류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잘 받고 와요 선배”라고 말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가슴 찡할 만큼 고맙다.


물론 몹시 고마운 사람은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내다. 모든 순간 함께하겠다는 든든한 그녀의 말은 내가 인생을 자신 있게 살아가는 원천이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은 하겐다즈로 사 먹으라고 용돈을 보내준 내 동생(수술 후 차가운 아이스크림 먹는 것을 병원에서 추천하기 때문), 소식을 듣자마자 전화주신 친척 어르신들까지. 아버지도 요즘 매일 전화를 하시는 걸 보니 나름 신경써서 챙기시는게 느껴진다.(아빠 전화 이렇게 자주는 처음 받아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지금은 긍정적인 면에 집중할 때다. 담담하게 수술받고 잘 회복해서 앞으로의 인생을 더 값지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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