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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Sep 08. 2022

갑상선 반절을 떼어내다

상선아 그동안 고마웠다.

그저께 다빈치 로봇을 이용하여 갑상선 반절을 떼어냈다. 갑상선은 목에 위치하고 방패 모양 대칭으로 존재하여 좌측을 갑상, 우측을 상선이라고 내 마음대로 이름을 지었다. 수술 전, 상선이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상선아 32년간 고마웠다. 갑상이는 그동안 고마웠고 앞으로는 더 잘 부탁해.”


수술 전, 선배들의 후기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이 아팠다며 통증이 글로 묘사되어 무서웠다. 절개 부위에서 느껴지는 칼로 베는 듯한 고통이라던가 얻어맞은 것과 같은 얼얼한 느낌 등등. 실제로 겪어보니 그런 통증이 느껴지긴 하지만 지속적인 것은 아니어서 견딜만했다. 아직도 종종 손발이 저리지만 글로 느꼈던 공포보다는 훨씬 나았다.


실제적인 고통보다는 통상적으로 암이라는 병에 대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얼마 전 정말 감명 깊게 들었던 서울대 허준이 수학자의 졸업 축사(낭만파 시인 아니세요?)만 보더라도 우리가 건강하게 80년을 산다고 가정하던데, 30대 초중반의 이른 나이에 암을 경험한다는 건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나.


수술은 잘 끝났고 이틀이 지난 지금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경과는 나쁘지 않다. 떼어낸 조직이 암인지, 임파선으로의 미세 전이가 있는지 여부는 조직검사가 완료되는 2주 뒤 알 수 있다. 여기서 최악의 경우는 미세 전이가 있는 것이고, 최선은 암이 아닌 경우다. 암이 아닌 경우 대체 왜 떼어냈는가? 싶어 당황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최선이라고 할 수 있나? 암튼 뭐가 됐든 앞으로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것이 내 계획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잘 지내는 것뿐이므로 나로선 이게 최선의 선택이다.


갑상선 수술을 하면 무조건 피주머니를 차는 줄 알았는데 임파선을 제거했을 때에 착용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 수술이 끝난 후 겨드랑이 흉터 이외에 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통증은 default고요). 겨드랑이 쪽 절개 부위는 녹는 실로 봉합 후 겉 부분에 의료용 본드로 마무리하여 따로 드레싱을 하지 않아도 된단다. 2주 후 외래 진료 시까지는 물을 닿지 않도록만 주의하라고 안내받았다.


입원 후 역시 강북삼성병원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었는데 그 이유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첫째, 담당 교수를 신뢰할 수 있다.

갑상선암은 수술 후에도 오랜 기간 추적관찰이 필요한 병이므로, 주치의 선택은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호기심이 많고 fact에 기반해서 이해하고 신뢰하는 내 성격을 고려했을 때 친절한 선생님을 만나야 했다. 내 담당 교수님은 실력은 당연하고 인품 또한 좋기로 유명한 분이셨고, 처음에 뵙자마자 이 분께 수술을 받아야겠다고 결정할 수 있었다.


1) 따뜻한 눈빛과 목소리를 갖고 계신 실력자를 찾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2) 전원은 물론 언제나 가능합니다만, 새로운 병원에서 거의 모든 검사를 새로 해야 하므로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대학병원의 경우 검사 예약만 몇 달이 걸리기도 하니까요.


3) 네이버 카페 '갑상선 포럼'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둘째, 진료의 편리성이다.

편리성이라고 하면 거주지로부터의 접근성, 회사 건강검진 정보 연계 여부, 예약 변경 탄력성 등이 있겠다.


1) 강북삼성병원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도착하기에 메이저 병원 중 가장 좋았다. 고속도로 교통 체증 때문에 자차로 서울에 가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차라리 강원도를 가고 말지).


2) 재직 중인 회사에서 매년 실시하는 건강검진이 강북삼성병원에서 실시되므로 데이터가 연계된다는 점은 큰 이점으로 다가왔다.


3) 강북삼성병원은 24시간 예약전화 hot-line을 운영 중인데, 전문 간호사가 상주하여 대응한다. 평일 18시가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내 수진 번호를 확인하고 어떤 검사가 남았는지 세부적으로 안내해주어 좋았다. 직장인들은 아무래도 업무 중 전화하기가 쉽지 않지 않나요? 하루를 지내다 보면 17시를 넘기기도 해서 이러한 전화는 심적 부담으로 다가왔는데 사소하지만 큰 이점들이 제게는 정말 좋았습니다.


셋째, 심적 평안함을 주는 병원의 규모다.

실력과 편리성이 확보되었으므로 병원의 규모는 작을수록 좋았다. 국내에는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삼성병원 등 거대한 병원들이 많다. 사람들이 초대형 병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명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규모가 큰 만큼 더 많은 수술을 하고, 임상 사례(환자)들도 많으니 당연한 일이겠다.


다만, 초대형 병원에 가면 그 특유의 느낌이 있다. (너무 바빠서)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카운터 직원, 수십 명의 대기자, 압도적인 규모의 건물... 왜 군중이 너무나 많아지면 그 안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비인간성을 느끼지 않나?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 개인의 특수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느낌(우리의 느낌은 대체로 적중한다). 그 누구보다 기댈 곳이 필요한 환자인데, 따뜻한 느낌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조금 서글프다.


그에 반해 강북삼성병원은 병원 내 인테리어와 동선, 장소 배치 등이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었다. 또한 병동 출입을 위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제공되는 전자 팔찌(어째 어감이 좀 이상하지만 발찌가 아니어서 다행), 수술 상황 카톡 알림 시스템 등 IT 요소가 곳곳에 가미되어있어 편리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병실 및 병원 전체적인 공간 인테리어도 감성적이고, 간호사 선생님들을 비롯한 의료진은 대부분 적극적이며 친절했다. 물론 강북삼성병원도 국내 10위권에 준하는 상급종합병원이므로 규모가 크다. 꽤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위기를 구축한 것은 삼성그룹 특유의 느낌인 것 같다. 한 마디로 '세련된 푸근함'이랄까.


수술은 비교적 빠르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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