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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Dec 20. 2022

당근에서 만난 낯선 남자에게 꽃을 선물 받다

아내에게 북미판 무음 아이폰 14프로 선물하기

아내 휴대폰의 나이가 벌써 5살을 넘기고 있었다. 연애 시절, 친구와 떠난 뉴욕 여행 중 데려온  XS 녀석. 사진을 즐겨 찍는 아내는 카메라 무음 기능을 선호했다. 우리가 미술관 데이트를 즐겨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작품과 함께 사진을 남기는 건 즐거운 일이나, 찰칵 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관람에 방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그리고 아내 사진을 똑같은 곳에서 적어도 5장 이상 찍어주면 칭찬받을 수 있다.)


필라테스 강사 일을 하며 사진 찍을 일도 많았기에 엄청난 화질을 자랑하는 요즘 제품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다만 북미판으로 구매해야 했으므로 약 1달 정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기 싫었던 나는 여느 때처럼 중고나라와 당근마켓에 검색해보았다.


'북미 14 프로 미개봉', '아이폰 14 무음' ... 등등 몇 가지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니 역시나 매물이 있었다. 아마도 여행 중 구매하여 국내에서 판매하여 얼마간의 차액을 남기려는 것일 테지, 구매자에게는 당장 사용할 수 있어 수수료 개념으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것은 나름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당근에서 가격이 적당한 매물을 골라 메신저를 날렸다. '안녕하세요. 아내에게 선물하려는데 조금 네고가 어려울까요?' 아내 주제의 네고 신공을 시도했으나 정중하고도 엄격한 거절 답변이 왔다. '네고는 현재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혹시 5일 동안 안 팔리면 생각을 다시 해보겠습니다.' 흠. 좋은 전략이군.


몇 번의 메시지 끝에 우리 집 앞까지 판매자가 와주는 조건으로 거래를 약속했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도착했는데, 한 손에는 샛노란 해바라기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빠르고 매너 있는 거래 감사합니다. 이거 원, 네고도 못 해 드리고 죄송한 마음에 꽃 한 송이를 준비했습니다. 받아 주세요."


약 20년간 중고 거래를 했지만 꽃을 받아본 일은 처음이었다. 처음 만난 이에게 브로맨스를 느끼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판매자께 감동이라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린 후 따뜻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또 뭘 샀어? 당근했지?라며 (귀여운 넘이라는 듯) 씩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아날로그 시대였다면 키를 열쇠구멍에 집어넣고 아주 살-짝 돌려서 소리가 안 나게 대문을 여닫을 수 있을 텐데, 디지털 도어록은 띠리링-하며 문이 열렸음을 우렁차게 알린다.)


아무것도 아냐~ 하며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작은 카드에 축하 메시지를 적고, 새로 산 아이폰을 포장했다. 그리고 선물 받은 해바라기 한 송이와 함께 아내에게 건넸다. 우와--!! 그녀는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미션 성공이었다. 참고로 아내는 이 글을 읽은 지금에서야 해바라기의 출처를 알게 될 것이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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