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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Jan 01. 2023

힘이 들지만 재미있는 vs. 편안하지만 재미없는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22년 12월 30일 금요일. 어제는 한 해의 마지막 출근날이었다. 명색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다가오는 내년을 준비하는 날이라서일까? 동료들의 오가는 대화 속에 평소보다 짙은 여유과 낭만이 배어 있었다.  오전 10시쯤, 모든 팀원이 초대된 업무 메신저 방에 부장님이 글을 띄웠다. '오늘은 늦어도 4시 이전에 퇴근하세요.'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예, 내일 4시 이전에는 퇴근하겠습니다.'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업무가 남아 있어서 퇴근이 불가능했다. 오후가 되자 사람들은 슬슬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자리까지 찾아와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이야기해준 분들도 있었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웃으며 화답했다.


3시쯤 되니, 마치 엑셀 작업 중 렉이 걸린 것처럼 머리가 정지됐다. 좀처럼 업무에 집중하기가 힘들었고 일이 진행이 되지 않았다. 맡은 일이 워낙 복잡하기도 하지만 화요일부터 매일 10시가 넘어서 퇴근해 피로감이 쌓인 컨디션 + (내 상황과 다른)부서 내 연말연시 분위기 때문이리라. 또한 내 업무는 뭔가 정해진 방법이 있어 속된 말로 노가다 작업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최근 스트레스가 쌓였다.  나도 집에 가서 (임신한)사랑하는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요! 짜증이 불쑥 났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심호흡을 하며 조금 걸었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내 베프이자 멘토로 인생이라는 항해에 있어 진정한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한참을 하소연했다. 그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지만 (현실성이 부족하여)나는 그냥 내 말을 들어만 달라고 부탁했다. INFP인 그녀는 정말 아뱅이다. 톡톡 튀는 몇 가지 웃긴 제안을 듣고 실소를 터트리니 기분이 나아졌다. 그래, 기분이 나아지고 싶어 전화했지. 임무 완수다. 고마워.


확인하, 다시 확인해야 하는 사항들이 많고, 조그마한 실수가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가 업무중인 나 자신을 마치 교도소의 감시관처럼 감시하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 '너는 이러이러해야 하고, 이것도 당연히 알아야 해! 담당자니까 당연한 거지.'라며 하루 종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최근의 스트레스를 부정하기는 어렵겠으나, 나 자신의 흥미와 커리어 측면에서는 분명 긍정적이었다. 지금까지 만 7년간 회사생활을 하며 맡았던 여러 롤(role)들을 돌이켜 보았을 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힘든데 재미있다. 일의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참 뿌듯했이는 마치 예술품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막막한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시나브로 자료와 데이터를 하나하나 조각하여 마침내 아름다운 완성품을 만들어내. 그리고 나의 노력이 어딘가에서 반영되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현실에 반영된다는 점 또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퇴근시간이 늦어졌고 백업할 수 있는 대체 동료가 많지 않아 쉽사리 연차를 내기 어렵지만, 업무의 성격만 보자면 내가 원했던 삶이 맞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알랭 드 보통은 work life balance가 허무맹랑하다 말했고 프로가 되려면  당연히 실력을 갈고 닦을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나는 이 간을 나라는 한 인간의 역량을 단련하고 강화하는 단계로 삼기로 다짐했다.


적어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하기 싫다는 느낌보다 어떻게 해낼까 라는 관점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는 이 느낌은 신기하면서도 한 편으로 뿌듯하다. 그래 잘하고 있다. 상황에 맞추어 행복하자. 행복을 정의하고 정답을 정해놓는다면 오히려 행복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다!




“젊은 시절을 방해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행복이란 생전에 꼭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가정 아래에서 행복 사냥에 나서는 일이다. 여기서부터 희망은 늘 좌절하기만 하고 그로 인해서 불만이 생겨난다. 우리가 꿈꾸는 막연한 행복의 기만적인 이미지들이 변덕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앞을 맴돌고, 우리는 그 실체들을 헛되이 찾고 있다. 적절한 충고와 가르침으로, 젊은이들의 마음에서 이 세상이 그들에게 줄 것이 아주 많다는 그릇된 관념을 털어낼 수 있다면, 그들은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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