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매년 찾아오는 벌초 시즌
어린 시절, 여름의 끝자락마다 할머니 댁으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할머니 댁 방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매번 작업복을 입고 새벽같이 나갔다가 세네시쯤 돌아오시곤 했다. 엄마가 벌초를 하고 오셨다고,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라고 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의 온몸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매년 9년 첫째 주말즈음이었으므로,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풀을 깎는 일을 하셨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할머니 댁이 기와집이었을 시절 뒷마당에는 지하수 펌프가 있었다. 물 한 바가지를 퍼서 넣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콸콸콸 쏟아졌다. 이 물을 이용해서 아버지 등목을 시켜드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시간이 흘러 나는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2812, 즉 중형차량 운전병 보직을 맡게 되었지만 나의 주 업무는 작업이었다.(운전병으로 입대했으나 작업병으로 전락해 버린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일병 즈음에는 전동드릴로 피스를 하도 잘 박는다고 행보관님께서 '김피스'라고 부르셨다. 상병 시절엔 예초병으로도 활약했다.
군 전역 후, 자연스레 우리 집안 일꾼의 일원으로서 벌초에 합류했다. 그때부터는 엄마와 여동생은 시골에 가지 않았고 나와 아버지만 참전(?) 했던 것 같다. 막상 벌초에 가 보면 그 당시에도(10년쯤 전) 젊은 사람들은 많지가 않았고, 수많은 친척들 앞에서 아버지는 함께 일하는 나를 대견스레 생각하셨던 것 같다. 여러분, 아들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너는 자랑스러운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해 주시라. 아들들은 어쩔 수 없다.
아기가 태어나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욕심이겠지만, 매일의 작은 해프닝도 놓치고 싶지가 않다. 별 것 아닌 줄로만 알았던 순간들이 실은 가슴 따뜻한 순간들이었음을 깨닫곤 한다. 이에 특별히 영상을 찍었고, 벌초 브이로그를 만들어 보았다. 우리 가족들은 재밌다고 하던데(주인공이니 그렇겠지) 다른 사람들도 재밌게 볼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영상을 통해 본인들의 가족들을 한번 떠올려보실 수 있으면 좋겠다.
*소리를 켜면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H7-YVqR2Qis?si=hnIYElnXerqb0FZ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