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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성 Nov 27. 2023

의사 선생님이 컴퓨터 화면만 봐요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시작된 불면증



침대에 누워서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것이 그렇게 재밌었다. 무서운데 재밌었다. 레전드 편을 몰아서 보고 대낮인데 소름이 끼치고 무서움에 떨었다. 그때 나는 요양병원에서 밤근무를 전담으로 하는 나이트킵을 8개월 간 하다가 그만두고 집에서 놀고 있는 백수였다. 무려 무려 네 번째 백수 생활이었다. 익숙한 생활이었다.


문제는 밤에 찾아왔다. 극심한 공포와 불안이 온몸을 감쌌다. 낮에 봤던 살인사건들이 생각나고 살인범들의 얼굴이 떠올라 사라지지 않았다.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막연한 불안으로 신경이 곤두서고 모든 소리에 예민해졌다.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 옆집이 문을 열고 닫는 소리, 출처를 알 수 없지만 일상적으로 들리는 생활 소음이 전부 거슬렸다. 문밖에는 사람이 서 있을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누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려고 하지 않을까.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미칠 것 같았다.


나이트킵 때문에 생체리듬이 깨져있는 데다 그 공포까지 겹치니 결코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길 며칠째, 이러다가는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용기를 내 가보기로 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집에서 가까운 곳 중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찾아갔다. 정신건강의학과를 간다는 것 자체는 거부감이 없었다. 요즘은 예전처럼 꼭꼭 숨기면서 다녀야 하는 곳이 아니니까. 다만, 아무래도 일반 병원과는 성격이 다른, 가보지 않은 미지의 곳이라 조금 걱정이 됐을 뿐이었다.


접수를 하고 이것저것 질문지 작성을 하고 드디어 진료를 받기 위해 의사 선생님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멋쩍게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을 시작으로 간단히 내 불면의 형태와 원인을 설명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은 내가 말한 내 불면의 원인이 아닌 다른 곳에 포커스를 맞춘 질문을 했다. 가족에 관한 것이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학창 시절 '가장 슬펐을 때', '불안했을 때'등의 질문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거기에 정말 솔직하게 적었다. '할머니가 나를 두고 죽는다는 생각.'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에 대해 물었다. 가족에 관해 물었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곧바로 눈물을 터뜨렸다. 울면서 이야기했다. 한참을.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으면서도 시선은 줄곧 컴퓨터 화면에만 있었다. 내가 생각한 정신과 상담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냥 내과 와서 진료받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그러다가, 겨우겨우 불면으로 이야기가 돌아와 그런 공포와 불안에 휩싸일 때면 심장이 막 뛴다고 했다. 그랬더니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원하던 거였다. 신경안정제면 됐다. 그렇게 첫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이 끝났다.





그런데 병원 건물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기분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매우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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