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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성 Dec 04. 2023

매일 먹어도 괜찮아요

신경안정제보다 더 안정제 같았던 말


 

신경안정제는 필요시에 먹는 약으로 처방받아 포장지가 아닌 통에 담아 받아왔다. 웬만하면 약을 먹고 자지 않으려고 했다. ASMR을 세 개 다 듣고도 잠이 오지 않아 새벽 1,2시를 넘기 시작하면 약을 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먹지 않고 자려고 했다. 그런데 도저히 약을 매일 먹지 않고는 잠에 들 수 없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지 않는데도, 보이지 않는 것에 느끼는 막연한 공포가 줄었는데도. 약을 먹기 시작한 지 2년 만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2021년 겨울, 그날 나는 가족에게 일방적으로 모진 말을 들었고 

되받아치듯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나쁜 말을 한 번에 내뱉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니 후련했는데, 

나도 처음 보는 내 분노에 찬 모습과 포효하듯 외친 말들이 낯설었다.

가족이라는 분노의 방아쇠가 또 당겨졌다.


잠이 오지 않아 밤을 새우고, 잘 먹지도 않는 술을 새벽부터 마셔댔다. 망가지고 싶고 흐트러지고 싶었다. 그러다가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했으며 눈물이 새어 나왔다.

한동안은 정서 변화가 심했다. 아무렇지 않게 TV를 보며 웃다가 갑자기 눈물이 흐르고 얼마 되지 않아 또 웃긴 장면이 나오면 웃었다. 청소하다가 갑자기 울고 30초도 안 되어 그쳐 아무렇지 않게 청소를 이어갔다. 그리고, 약이 떨어져 갔다. 병원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침대를 놔두고 바닥에 이불을 깔아 구석에 틀어박혀 온갖 안 좋은 생각을 했다. 답답해서 미칠 것 같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죽고 싶지만 죽을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살고 싶지도 않았다. 진퇴양난이었다. 결국 힘겹게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고, 병원에 갔다. 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었다. 이 이야기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곳이 딱 한 곳 있었다. 그곳에라도 가 그거라도 해야 했다. 죽지 못할 거면.


원장님은 여느 때처럼 "세성 씨, 여기 앉으세요."라고 했다. 나는 어두운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원장님의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고 모자 아래로 얼굴을 숨겼다. 이윽고 그녀가 물었다.


"잘 지내셨어요?"


나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요. 못 지냈어요."


그 말을 하자마자 물이 꽉 차서 크기가 커진 풍선이 압정에 찔려 터지듯 나는 태어나서 가장 서럽게, 가장 크게 울었다. 그리고 2년 가까이 진료를 받으며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했다.



매일 먹어도 괜찮아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들은 원장님은 매일 먹는다고 이상이 있는 약이 아니니 억지로 안 먹어야겠다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먹으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안정이 됐다. '너 좀 망가져도 돼. 버티지 마. 안 그래도 돼.'라는 말 같았다. 걱정하는 표정으로 경청하시며 계속 우는 내게 휴지를 건네주던 원장님께 모든 것을 털어놓고 병원을 나온 뒤에 든 생각은 여기마저 없었으면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겠다. 였다. 그때 내게 병원은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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