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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성 Dec 23. 2023

프롤로그

사귈래?

물컵을 손에 쥔 뒤 왁자지껄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뚫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정수기로 향했다. 조르륵. 물이 컵에 채워지는 것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낯선 얼굴들이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얼굴을 안 지도, 이름을 안 것도 얼마 안 된 옆 반 남자애 두 명이었다.

      

"사귈래?"     


잠시 내 뒤에 누가 또 있나 싶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그 애의 눈이 날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다지 진지하지도, 그다지 웃고 있지도 않은 얼굴을 한 그 애가 내게 한 말에 나는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갑자기?’였다.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귈래?"도 아닌 밑도 끝도 없는 ‘사귈래.’ 아니 사실 전자처럼 말했어도 놀랐을 것이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있었니? 나는 멍하니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그 애의 뒤에 매달린 그의 친구 영석이 놀리듯 말했다.     


“당황, 당황”    

 

대답이 없는 나를 보며 재밌다는 듯 웃고 있는 영석과 아무 말 없는 그 애. 정해민. 두 사람은 아직 얼어붙어 있는 나를 뒤로하고 멀어져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려 아직 왁자지껄한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나부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기억의 강이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아, 해민이랑 어쩌다가 네 얘기가 나왔는데 걔가 이러더라? '걔 귀엽게 생겼던데.'"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옆 반 지연이 전해준 이야기에 의아했지만 내심 좋았던 기억이 났다. 좋았던 건 누군가가 날 좋게 봐줬다는 것이고 의아했던 건 ‘엥? 걔가? 날 어떻게 알고?’라는 마음에서 나온 감정이었다.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 말이 복선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해민은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초등학교도 다른 곳을 나왔고 중학교에 올라와 반도 달랐다.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 소속의 분교에 다녔던 내가 아는 사람이려면 같은 분교를 나왔거나, 읍내의 초등학교를 나와서 한 번쯤 봤을 수도 있을 사이여야 했다. 


그러나 해민은 다른 동네의 다른 초등학교를 나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이였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에 무지했던 나는 그날 받았던 가벼운 고백이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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