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언제 남친 생겼어?
나는 도시는 당연히 아니며 군도 아니고 읍도 아닌 '리'에 사는 시골 여자애였다.
버스로 10분 거리인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점점 줄어 초등학교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분교'가 되었다.
그 분교에서 6년의 시간을 보낸 나는 태생이 내향적인 아이였으며, 태생+부모의 이혼이라는 계산법 아래 모든 일에 극히 조심스러운 아이로 학교를 다녔다. 그런 내게 읍내에 있는 중학교는 큰 세계나 다름 없었다.
모르는 애들이 훨씬 많은 크나큰 세계.
그 세계에서 주목 받는 것을 거부하는 나는 2년이란 시간동안 누군가의 시선에 잠겨 있게 되었다.
내게 괜한 두근거림만 남겨둔 채 그날 이후 별 다른 행동이 없던 그 애를 잊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단짝 중 한 명인 염아와 함께 전 수업시간에 빌렸던 책을 가져다주러 3반에 들어갔을 때였다.
교실 밖을 빠져나오던 해민의 일행과 마주쳤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려던 순간, 듣도 보도 못한 말을
들어야 했다.
"어, 내 여친!"
정해민은 아주 밝은 목소리로 한 마디 한 후 지나갔다. 깜짝 놀랐지만 모른 체하고 지나간 나와 반대로 옆에서 그걸 들은 염아가 말했다.
"야 좋겠다~"
그러자 잊혔던 그날의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나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마 해민과 친한 주변 인물들은 해민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주 늦은 후회를 한다. 그때 모른 체했으면 안 됐다고. 처음부터 한 마디 했어야 했다고.
예를 들면,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내가 왜 네 여친이야?"
이렇게...
어쨌든 이후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 애의 여자친구가 되어 버렸고 그 애의 친구들에게 '해민이 여친'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난 사귄다고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애와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교차점이 없었던 남자아이의 적극적인 태도에 해민이 또 나에게 어떤 관심을 보일지 나를 좋아하는 게 확실한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당황스럽고도 놀라운 건, 그 부분에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그 말을 듣고 싶어 했던 나 자신이었다.
바보 같은 나는 처음으로 '여친' 발언을 들은 날, 그 관심이 얼마나 위험한 관심이 될지 모른 채 그 애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