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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성 Jan 01. 2024

3. 같은 조가 되었다

공포로 다가온 영어수업

해민과 나는 같은 반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해민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향인지, 어떤 애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으므로, 그 애와 짝꿍이 되거나 좀 친해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와 약간의 설렘은 영어수업을 기점으로 산산히 조각나고 말았다.


마의 영어수업은 공포의 수업시간이 되었다.







영어시간 1.



"4조. 진석,혜지,해민,두리."



맙소사? 해민이와 같은 조라고? 당황스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짜여진 조대로 자리를 맞춰 앉았다.

우리 조는 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에게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나는 얼결에 해민의 옆에 앉게 되었다. 괜히 긴장이 됐다.



영어시간 2.



어학실에서 한 두 번째 영어시간. 해민이 유인물을 나누어 주다가 내게 말한다.



"야 얘 콧수염 있다?"



자기 친구에게 말을 하며 계속 놀리는 해민. 시비를 거는 그 애의 말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영어시간 3.



전자시계를 차고 있던 내게 해민은 영어시간이면 끝없이 시간을 물어보며 나를 건드렸다.

한 번 묻는 말에 대답해주면 몇 초가 지나고 또 물었다.

대답하면 또 묻는다. 50초~2분 간격으로 계속 물어대는 통에 나는 이미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귀찮아서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 괴롭혔다.


내 의자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내가 짜증내면서 원위치로 당겨놓으면 또 한다.

그러면 나는 정색하며 말한다.


"하지마."


"예."



돌아오는 건 성의없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또 한다. 나는 또 다시 자리로 간다. 그러면 또 한다.

몇 번 반복되자 내가 쳐다보면 태연한 표정으로 말한다.



"내가 안 했어."



화가 난 내가 째려보자,



"안할게. 진짜로."



거짓말이었다. 또 하더니 재밌는 듯이 웃는다.



"좋아?"



"응."



얼마 되지 않아 또 다시다. 이번엔 되도 않는 말을 한다.



"내가 좋냐? 내 쪽으로 오게."



"미쳤냐? 널 좋아하게?"



기분이 상한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어쩐지 속이 시원하지만 상처를 받았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시간 4.



조장을 정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해민이 가타부타 말도 없이 다수결로 내 짝꿍이자 같은 조원 진석에게 조장을 하라고 한다. 당연히 안 한다고 하는 진석. 그러자 갑자기 외친다.



"안 내면 지기 가위바위보!"



뭐야, 나만 안 냈다.



"야, 진석이 해."



그런데도 진석에게 하라는 해민. 선생님이 우리에게 조장이 누구냐고 묻는다.



"진석이요."



진석의 표정을 살핀 선생님이 물었다.



"진석이 하기 싫어?"



"네."



"그러면 안 돼. 다시 정해."



이번엔 "주먹내면 지기."라고 또 갑자기 말한다. 멍청하게 나는 또 걸렸다.

마지못해 조장이 나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영어시간 5.



교과서 본문읽기를 했다. 각각 세 줄씩 읽기로 먼저 눈으로 읽어보는데 해민은 혜지랑 진석이한테만 물어보고

나한테는 절대로 묻지 않는다. 왜? 내가 혜지보다 잘 하는 거 알면서?


곧이어 소리내어 읽기를 시작했다. 무사히 끝낸 진석 다음으로 해민 차례였다.

맞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 선생님이 도와줘서 겨우겨우 끝낸다.


그 다음 내 차례.


해민에 비해 너무도 빨리 읽어버린 나. 혜지도 무난하게 읽기를 마쳤다.



"아 쪽팔려."



쪽팔린 건 아는건가. 우리조가 끝나자 나지막이 해민이 말했다.











모든 일이 불과 3주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다섯 시간만에 나는 그 애에게 넌더리가 났다.

영어 시간이 가장 싫은 수업 시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나에게 고백했던 사람이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이 애는 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싫어한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해민과 나의 불쾌한 관계성이 쌓이며 3월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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