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이 지났다. 내가 사는 곳은 태풍이 온 듯 안 온 듯 흘러갔고 폭우도 짧았다. 대신 무지 더웠다.
이제야 선선한 밤이 되어 산책할 만한 바람이 분다. 9월.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 오려나 보다.
딱 봄과 여름, 두 계절을 지내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전부 예상과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만두네 마네 고민했고 힘들었던 새로운 병원은 한 달만 해보자, 세 달만 해보자 하다가 6개월을 다니고 있고 지난해, 지지난해에도 하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이사도 충동적으로 저질러버렸다. 이사를 얼마 남기지 않고 불현듯 운전을 하기로 결심했으며, 쇠뿔을 단김에 빼 경기도까지 가서 중고차를 덜컥 구매해 버렸다.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정신과도 옮길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괜찮은 병원이 있어 두 번의 진료를 봤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일이 적응되었기에 가능했고 혼자라면 할 수 없었을 일이었다.
일요일. 구월 일일. 좋은 날짜와 좋은 요일이다. 오랜만에 집에만 있는 주말이었다.
7시 15분에 맞춰져 버린 생체 시계 때문에 아침 햇살과 함께 여유롭게 오전을 보내고 나가고 싶은 욕구와
귀찮은 몸이 갈등을 빚은 채 저녁이 왔다. 결국 나가지 않았다. 차를 산 이후 운전 욕구를 풀어야 뭔가
해소가 되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사실 지난주에 차선 변경을 잘 못해서 참 교육을 당한 이후로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나 다음 주는 나갈 것이다...!
곧 볼 수 있겠지.
어쨌든 자질구레한 안부는 집어치우고 요즘 하는 생각을 둥둥 띄워보자면, 음...
혼자가 되는 것의 두려움이라고 할까.
같이 있는 것, 같이 하는 것이 적응될수록 혼자가 될 내가, 혼자가 되면 닥칠 일들을 감당할 내가
두렵다.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고 하는 말에 예전엔 동의할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그건 서로가
비혼주의자일 때 가능한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언젠가 이 사람과 헤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간의 모든 변화에 그가 많이 녹아들었다. 고맙고 또 고맙다.
그럴수록 내겐 혼자인 것이 힘든 일일 수 있겠구나 느낀다. 예전의 나는 혼자가 좋았다.
혼자 하기 힘든 일이 있어도 용기를 내 도전하고 성공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끼고 어른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싫었다. 뭐든 내가 해내고 싶었다.
그런 내가 바뀌었다. 큰 일들을 혼자 할 수 있을까.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이리 안정을 준다는 것을
알아버린 요즘, 아예 없었던 것보다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견디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아프고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