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야기 #3

가을은 단풍, 단풍은 설악산

by J브라운




글을 쓰면서 몇 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난 장거리 출퇴근 운전자다.


회사까지의 거리는 편도 70km여서 하루에 출퇴근 만으로 왕복 140km를 운전한다. 시간으로 따지면 매일 3시간 이상을 차 안에서 운전하며 보내고 있는 건데 그래서 주말엔 어지간하면 운전을 하지 않으려 한다. 평일에 충분히 운전을 많이 하기에 주말까지 운전대를 잡고 싶지 않은 건데 나와는 달리 아내는 주말만 되면 어디든 차를 가지고 나갔다 오고 싶어 한다.


하긴, 우리 부부는 쉬는 날 가만히 집에만 있는 성향이 아니다. 시간 되는 대로,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어디든 나갔다 오려고 한다. 물론 운전은 나 혼자 하고 있는데 아내도 운전면허가 있긴 하다. 딴지 6년 정도 됐까? 하지만 면허를 따고 지금까지 운전을 해보지 않아서 그냥 없는 셈 치고 있다. 아내는 종종 믿고 맡겨보라고 말은 하면서도 차 앞에 도착하면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 조수석으로 몸을 밀어 넣곤 한다.

예전엔 둘 다 직장이 서울이어서 평일 출퇴근은 거의 대중교통을 이용했기에 운전을 좋아하는 나로선 주말에 드라이브 가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매일 140km를 운전하고 있는 지금은, 주말까지 운전을 하는 게 내키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게다가 가끔 강원도나 전라북도까지도 당일치기로 떠나는 경우가 있어 휴일에도 새벽에 출발하는 경우가 많고 이럴 땐 거리도 왕복 500km 이상 되기도 해서 아무리 운전을 좋아하는 나일지라도 조금 버거울 때가 있다.


이런 와중에 조수석에 앉아 내 운전습관에 대해 잔소리를 하다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내를 볼 때면 가끔 왠지 모를 얄미움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슬쩍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 네 개를 가지런히 모아 자고 있는 아내의 이마를 살며시 한 대 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가을이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긴 했지만 맑고 깨끗한 하늘에 바람까지 선선한 가을인데 운전 그까짓 게 조금 힘들다고 집에만 있을 순 없다. 이미 핑크뮬리와 억새를 봤고, 마지막으로 이제 단풍을 봐야 차례다.


가자 설악산으로


2021년 10월 30일.

단풍을 보러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단풍은 역시 설악산인 것 같아서, 그리고 얼마 전부터 강원도 타령을 시작한 아내를 위해 결국 속초로 떠나기로 했다. 한창 사람이 많은 시기인 만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할 것 같아서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에 3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찍혔다. 일단 최대한 빨리 가평을 지나는 게 1차 목표였다. 다행히 제1순환고속도로를 지나 서울~양양 고속도로로 들어선 뒤에도 크게 밀리는 구간은 없었다. 일찍 나온 보람이 있구나 싶은 마음으로 설악산 입구까지 도착했는데 이럴 수가.


설악산 입구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가 시작됐다. 이때 시간이 겨우 아침 8시를 조금 넘었을 때다. 저 앞에 보이는 전광판에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은 만차이니 근처 무료주차장을 이용하라는 문구가 보였다. 무료주차장에서 소공원 입구까지는 걸어서 15~20분은 걸리는 거리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새벽부터 잠도 못 자고 서둘러 나온 건데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렇게 15분을 넘게 걸어 설악산 소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니 언제나 그렇듯 반달곰 동상이 우리를 맞이해 준다. 그런데 볼 때마다 좀 의아한 생각이 든다.


반달곰은 지리산의 마스코트 아닌가?

설악산 소공원 입구
단풍은 역시 설악산


반달곰을 지나 조금 더 들어오니 길가에 나무들이 울긋불긋 어여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저 멀리 울산바위도 보이고 권금성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도 보였다. 우리는 권금성 케이블카 이용권을 먼저 끊기로 하고 매표소로 향했는데 이미 한 시간 이후까지는 예매가 완료돼서 넉넉하게 2시간 후 이용권을 구매했다. 그 사이 비는 시간엔 2.4km 거리의 비선대에 다녀오기로 했다.


소공원 안에는 신흥사라는 절이 있다. 절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데 여기에 있는 불상이 정말 크다. 볼 때마다 그 크기에 압도되는 느낌인데 얼핏 봐도 푸르스름하게 녹이 슨 모습이 얼마나 긴 세월의 풍파를 겪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신흥사 불상

그곳을 지나 다리를 건너 비선대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참 예쁘다. 완만한 오르막길이라 걷다 보면 조금 힘들긴 한데 길바닥이 흙이 아닌 콘크리트 걷기 편하고 키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햇살이 바로 들지 않아 언제나 시원하다. 나무들 사이로 울긋불긋한 단풍도 많이 보인다. 색이 참 곱다. 어떻게 저런 색이 나올 수 있을까. 사람들이 없을 때 종종 마스크를 내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비선대 가는 길

그러다 보니 지난여름이 떠올랐다. 무더운 여름이라 산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왔었는데 예상대로 사람은 없어서 좋았으나 폭염 속에서 산길을 걷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다. 결국 비선대로 향하던 발걸음을 10분 만에 되돌렸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가을의 선선한 공기가 비선대로 향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었고 그 덕분에 그리 힘들지 않게, 정말 오랜만에 비선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역시나 절경이다.

비선대

비선대와의 조우를 뒤로 하고 이번엔 권금성으로 올라갔다. 권금성으로 가기 위해선 케이블카를 타야 하는데 솔직히 케이블카는 탈 때마다 겁이 난다. 예전엔 분명 겁이 없어서 놀이기구도 잘 타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슬슬 겁이 많아지더니 지금은 바이킹 하나만 타도 난리가 난다. 하물며 안전장치가 전혀 없어 보이는 케이블카를 탈 때면, 혹시나 추락사고가 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괜스레 마음이 조마조마 해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고 주위 경치를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권금성에 도착했다.


권금성은 설악산 전체를 감상하기에 좋을 뿐 아니라 저 멀리 바다까지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좋다. 아내와 결혼 전 연인 사이로 이곳에 왔을 땐 권금성 꼭대기에 기어올라가면 기념 메달도 판매를 해서 샀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은 위로 올라가는 코스를 막아놓았다. 오늘도 역시나 권금성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의 모습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사계절 내내 그렇지만 역시나 내겐 가을의 지금 이 풍경이 으뜸이다. 새벽부터 출발한 보람이 있다.

권금성에서 바라본 설악산

사진 수십 장을 찍고 내려와 이번엔 소공원 곳곳에 자리 잡은 빨간 단풍들을 구경했다. 오전이 지나면서 해가 뜨기 시작했고 그 햇살에 가을 단풍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집 뒤에도 제법 높은 산이 있고 단풍이 들었지만 그와는 다른, 설악산에서만 느껴지는 가을 분위기가 있다. 뭐라 말로 정확히 표현하긴 어렵지만 이곳만의 가을 공기가, 풍경이 너무나 좋고 그래서 멀다고 툴툴대면서도 매년 이 시기엔 어김없이 또 여길 찾게 된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가을단풍 하면 설악산이다.

설악산의 단풍

설악산에 오면 항상 양양에 있는 낙산사를 들르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낙산해변에 있는 이곳. 풍경과 전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서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오늘은 소원지를 적는 게 있어서 아내와 함께 소원을 적어 예쁘게 묶어 놓았다. 지나오면서 보니 다들 소원이 비슷비슷한데 나를 포함해 가장 많이 눈에 보이는 건 역시나 로또 1등이다. 이런 물질 만능주의자들.

낙산사 해수관음상

마지막으로 낙산사 근처에 있는 정암해변으로 향했다. 낙산사 바로 옆에 낙산해변이 있긴 하지만 사람이 많아 보여서 가까이에 있는 작고 조용한 정암해변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낙산사에서 이곳까지는 차로 금방이다. 도착해서 1년 내내 트렁크에 있는 캠핑의자 두 개와 원터치 텐트를 챙겨 해변가로 향했다. 주차장과 해변엔 차박과 캠핑을 하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우리도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바다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하늘엔 구름이 붓으로 휙 그린 듯 길게 퍼져 있었고 바람에 거세진 물결이 세차게 부서지며 시원한 파도소리를 들려주었다. 잠시 눈을 감으니 마치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홀로 앉아 있는 듯한 적막함이 느껴졌다.

정암해변

살면서 가끔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이 시간에 딱히 무얼 하려고 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잠시 머릿속을 비우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역시나 걱정은 쓸데없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이런저런 생각들로부터 시작되는 것일 테니. 그렇게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이른 새벽에 나와 오후 6시가 되어가는 지금까지 13시간을 밖에서 보내는 것 치고는 컨디션이 좋았다. 이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조금 전이었다.

새벽 5시에 나가 꽤 오랜 시간 돌아다니다 왔는데 웬일인지 그리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씻고서 아내와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며 오늘 찍었던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겨봤다. 둘 다 표정이 잔뜩 신이 나 있고 그런 우리의 모습과 곁에서 오늘 하루를 가득 채워준 이 가을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겼다.


가을이 오고 나서 꼭 보고 싶었던 것들을 이제서야 다 보게 됐다. 화사한 색으로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 핑크뮬리와 가을 햇살 속에서 하늘 거리던 억새, 그리고 한층 짙어진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준 울긋불긋한 단풍까지. 이 아름다운 계절이 이렇게 가는 게 너무도 아쉽지만 또 시간은 돌고 돌아 올해보다 더 예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와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녕 2021년의 가을아,

내년에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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