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3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해 온 친구들에게서 충격적인 사건을 하나 전해 들었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거라 생각했던 6명의 친구들 중 두 녀석이 절교 선언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그 둘은 무리 중에서 가장 먼저 친구가 됐던 녀석들이고 절교 전까지 1주일에 1~2번은 만나던 사이였는데 그런 둘이 얼굴을 안 보고 산지 1년이 다 되어간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린 시절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2~3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던 우리 가족은 자식들의 학업을 위한 부모님의 결정으로 내가 국민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서울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군부대의 특성상 전남 광주, 강원도 등 지방에서만 살았던 나는 그야말로 시골 촌놈이었는데 30년이나 지났음에도 서울에 올라와 처음 지하철을 타 본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사를 오고 엄마는 집 근처의 작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는데 그런 엄마의 강요 아닌 강요에 나도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게 됐다.
내 오랜 친구들
엄마를 따라 간 교회는 동네의 작은 교회였다. 당시 그곳에는 초등학생 예배가 따로 있는 건 아니어서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 후 성경공부를 위해 학년별로 모임이 있었고 그 성경공부 모임에서 지금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1주일에 한번 교회에서 만나는 것만으론 쉽게 친해지지 못했는데 6학년이 되면서 학교에서도 같은 반이 되었고 특히나 그때 친구 어머님 중 한 분이 교회 친구들끼리 매주 토요일에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키가 크고 검은 얼굴에 약간 곱슬머리라 아프리칸 불스라 불리던 양원장.
호리호리한 체격에 누런 피부, 누런 이빨. 그런 생김새가 왠지 잘 익은 옥수수를 닮은 김 선생.
어려서부터 게으르고 양치를 잘 안 해 입냄새가 심했지만 세상 순박했던 봉구시.
봉구시의 친구로 알게 된, 덩치는 크지만 그 덩치값을 전혀 못하는 섬세한 똥욱이.
역시 봉구시의 친구로 알게 된, 얼핏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를 닮은 봉쥬르 라이프 두칠이.
그리고 나.
중, 고등학교는 뿔뿔이 흩어져 다녔지만 다들 한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주말이나 방학 땐 이 친구들과 늘 함께였고 그렇게 10대 시절부터 20대를 지나 30대, 그리고 40을 넘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우정을 지켜올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이 친구들과의 추억은 셀 수 없이 많다. 기쁘고 힘든 순간뿐만 아니라 그냥 내 일상에 항상 함께 있었던 친구들이라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이 중 둘이 절교를 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게다가 그것도 거의 1년이 되어 간다는 사실은, 아무리 코로나가 있다곤 하지만 그간 내가 얼마나 친구들에게 소원했었는지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이 녀석들에게 정말 면목이 없다.
무슨 일일까
괜히 마음이 다급해져 당사자 녀석들, 그리고 그 당시 함께 있었던 친구의 얘기를 들어봤는데 사정이 조금 복잡했다. 차라리 술김에 서로 주먹다짐을 벌인 거라면 나았을 것을. 그랬다면 두 녀석이 술 한잔 하면서 시원하게 화해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로에게 조금씩 쌓여가던 사소한 오해와 감정들이 어느새 두 사람 사이를 저만큼 멀리 갈라놓았고 둘은 서로에게 먼저 다가갈 마음도 없는 듯했다. 그냥 다 같이 만나는 자리만 피하면 되는 거고 경조사 때나 얼굴 보면 되지 않겠냐는 친구의 덤덤한 말이 내 마음속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20대나 됐으면 친구들과 함께 이 두 녀석을 불러다가 술 한잔 마시면서 이제 그만 풀어버리라고 다그치기라도 할 텐데 불혹을 넘긴 지금은 이것마저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이렇게 관계를 끝내버리기엔 그동안 함께 해온 시간들이 너무나 길고 아쉽다. 5년, 10년도 아니고 무려 30년이다. 이 긴 시간을 함께 해온 친구와의 인연을 이렇게 단칼에 슥삭 잘라낼 수 있을까. 하지만 둘 다 자존심이 워낙에 센 녀석들이라 먼저 손을 내밀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옆에서 보기에 참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다.
인간관계에 대해
나일 먹어가면서 언젠가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던 적이 있다. 예전엔 무조건 인간관계의 다양함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인맥을 넓히고자 노력했었고 한번 맺어진 인연은 되도록이면 쭉 이어가려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많은 관계를 모두 이어가기엔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언젠가부턴 굳이 이어갈 필요가 없을 것 같은 관계는 과감하게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함께 있을 때 기분 좋고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만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굳이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며 서로에게 큰 의미가 없는 관계는 지속하고 싶지 않아 졌다.
생각을 정리한 후 카톡에 천명이나 넘게 있던 친구 목록을 줄이고 줄여 절반 이상을 정리했고 셀 수 없이 많이 저장되어 있던 전화번호도 싹 다 정리했다.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미 오래전에 연락이 끊겨 버린 사람들도.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괜히 뭔가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절교를 선언한 친구 중 한 녀석이 이런 마음이라 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언제부턴가 만날 때마다 뭔가 앙금이 쌓이고 편치 않아서,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만나야 할 이유가 있나 싶어 졌다고.
이 얘기에 내가 물었다. 그렇게 자주 만났으면 그동안 서로 솔직하게 터놓고 마음속 얘기를 할 시간이 충분히 많지 않았냐고, 왜 그러지 못했냐고.
친구가 답했다. 전에는 그렇게 티격태격하다 헤어지면 다음날 본인이 먼저 미안하다 얘기하고 넘어갔는데 그날따라 쌓이고 쌓인 게 터져버렸는지 말싸움 후 집에 간다는 말도 없이 그 자릴 박차고 나가버린 친구 녀석에게 다신 연락하고 싶지 않아 졌다고.
조금은 어처구니없게도 이게 그 둘의 마지막이었고 이후 서로 연락을 한적도, 얼굴을 본 적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시간의 힘을 믿기에
얼마 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이 두 녀석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임을 가졌다. 오랜 친구의 좋은 점은 평소 연락이 뜸하고 자주 만나지 못해도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면 어색함 없이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도 잠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서로 머리를 맞대 봤지만 딱히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40이 넘은 중년의 아저씨들 마음을 아무리 친구라지만 우리가 어떻게 돌려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미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리기도 했다. 일이 막 벌어졌을 때 알았다면 이렇게 아무것도 못해보고 답답하게 있지는 않았을 텐데. 30년 지기 친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참 미안하고 너무도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는 얘기한다. 그래도 시간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라고. 30년의 시간이 맺어준 인연인만큼 그렇게 쉽게 끊어낼 수 있는 사이는 아닐 거라고. 1년이 지나긴 했지만 30년이란 세월에 비하면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고 그동안 감정의 응어리를 걷어낸 두 녀석이 늘 그랬듯 티격태격하며 술 한잔 할 날이 곧 올 거라고.
정말 그렇게 되길 바라본다.
이 녀석들아, 우린 친구 아이가!
그것도 30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 한.
난 이 시간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