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습니다. #1

퇴사의 이유

by J브라운




몇 년전 7월의 어느 날.

한 여름의 무더운 날씨에 회사에서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던 나는 팀장님(차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며 잠깐 옥상으로 올라가자 말씀드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옥상으로 올라온 팀장님이 담배를 한대 꺼내어 무시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차장님, 저 퇴사하려고요."


마른 얼굴에 원래도 눈이 꽤나 크셨던 차장님은 내 얘기에 두 배는 더 커진 눈으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계셨다. 하지만 그런 차장님과는 달리, 며칠 동안 이 얘길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나는 그제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해 6년을 다녔던 내 첫 회사와의 시간은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퇴사의 이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몇 번씩은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년간의 근무가 불러오는 매너리즘, 좀처럼 오르지 않는 연봉, 조금씩 늦어지는 진급, 내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부진한 고과 평가, 동료와의 불화, 상사의 스트레스 등 퇴사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퇴사를 하는 사람은 없다.

습관처럼 퇴사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정말 이직을 하고 싶어도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올려야 하는 연봉, 새 직장의 낯선 사람들과 환경, 알 수 없는 조직문화, 그 회사의 비전 등.. 아마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동종업계 대비 적당한 연봉을 받고 업무강도도 그리 과하지 않다면 아마 이직에 대한 열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희미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퇴사하는 사람들은 꽤나 많다. 도대체 왜 일까?

일이 힘든 건 참아도
사람 때문에 힘든 건 못 참는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얘기인데 만고의 진리 같은 이 말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였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처음 사회로 발을 내딛고 6년간 다녔던 회사를 나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사람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에게 생애 첫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었던 이 회사는 대기업 계열사로 나름 괜찮은 기업이었다.

무엇보다 사무실이 걸어서 출퇴근을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있어서 좋았고 연봉과 복지도 대기업 계열사여서 그런지 여느 중소기업보다는 훨씬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입사를 해보니 근무환경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중 칼퇴근(오후 5시 30분)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는 점은, 요즘 흔히 말하는 워라밸을 가능케 하는 최고의 조건이었다. 동종업계 대비 높은 연봉, 괜찮은 복지, 힘들지 않은 업무강도, 직주근접 그리고 그리 수직적이지 않은 사내 문화까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수많은 면접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셔야 했던 나는 '그래, 여기에 오려고 그간 그렇게 똥줄을 태웠던 거구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회사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연차가 쌓여 동기들과 대리로 진급도 하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업무가 조정되면서 유통채널(홈쇼핑)을 맡고 있던 내게 신제품 개발이라는 새로운 업무가 더해졌다. 이런 업무는 통상 상품기획팀에서 맡게 되는데 그즈음 상품기획팀의 오래된 직원들이 시차를 두고 다 퇴사하고 그 자리를 신입 및 경력직 인원들이 대체하게 되자 단지 그들보다 회사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그 업무와 아무 관계없는 나에게 업무를 분담시켰던 것이었다.


'영업부서 인원에게 신제품 개발을 맡긴다고?'


이 부분에 대해 팀장님께 내가 감당할 만한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어필하긴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회사 방침이니 어쩌겠느냐는, 일명 '까라면 까'라는 말 뿐이었다. 그리고 내겐 그때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다.

회사를 다닌 지 5년이 됐지만 처음 해보는 상품기획 업무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고 사무실 안에서도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기존 오래된 상품기획 팀원들은 다 나가버리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회사 시스템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신생아 같은 상품기획 신규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시즌 상품이었기에 런칭일정은 이미 대략 정해져 있었고 그 기간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매일같이 내 어깨를 강하게 짓누르곤 했다.

여기에 더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가 험난했던 게 사무실의 절대자였던 상무님이 매일같이 선사해주신 새빨간 지옥의 맛은 우는 아이 뺨까지 때리는 꼴이 되어 결국 나를 퇴사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일만 힘들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버텼을텐데 결국 상무님이라는 거대한 벽까진 넘지 못했던 것이다.


사무실의 절대자


상무님은 워커홀릭이었고 화가 참 많으신 분이었다. 쉽게 흥분하고 그만큼 쉽게 가라앉는 성격이셨는데 화가 나면 남녀, 직급을 가리지 않고 거친 욕설이 거침없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리고 업무능력도 뛰어나셔서 언제나 강조하셨던 논리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는데 흥분해서 새빨개진 상무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 큰 목소리의 거친 욕설을 듣고 있노라면 사무실의 어느 누구도 제정신으로 버텨내지 못했다. 그래도 정은 있으셔서 화를 내신 날은 꼭 그 직원과 술 한잔 하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시던 상무님. 상무님은 한 마디로 다혈질 그 자체였다.


내가 상품기획 업무를 맡으면서 이런 상무님이 직접 업무를 챙기시기 시작했는데 이쪽 분야에 대해 1도 모르던 나는 언제나 상무님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꼼꼼하고 빠른 일처리를 중요시하시는 상무님은 내가 조금만 버벅대기만 해도 가만히 계시질 않았다. 쉼 없이 나를 불러 지지고 볶아대셨고 함께 개발하는 거래처에서도 관계자들이 모두 있는 자리임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큰소리로 면박을 주시기 일쑤였다. 어디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를 거의 들어본적 없었던 나는 이때를 기점으로 내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건 멘탈붕괴로 이어졌다.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서 처음으로 내일이 오는 게 두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3~4달을 지내고 나니 나도 너무 지쳐버렸다.

분명 끝이 정해진 기간이었지만 당장이 너무 힘들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 것이다.


언제나 만족스러웠던 회사 생활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힘든 건 견딜 수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퇴사하겠습니다


결국 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결혼한 지 1년이 채 안됐을 때인데 아내에게 얘기하면 분명 말릴 것 같아서 상의도 없이 마음을 굳혀버렸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팀장님께 말을 꺼낼 기회만 엿보고 있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확 질러버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사표를 던졌다는 내 얘길 듣던 아내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만 꿈뻑꿈뻑, 할 말을 잊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제야 아내에게 그간의 얘길 털어놓았는데 처음엔 황당해하던 아내도 내 얘길 듣고는 잘했다고, 회사가 어디 거기뿐이냐며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 위로해 줬다.

(우리 아내 최고!!)


회사에 퇴사를 하겠다 얘기하면 대부분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을 한다. 꼭 그 사람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 새로운 인원을 뽑고 그 사람이 적응해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혹시나 중간에 퇴사를 할 수도 있기에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서 잡으면 그대로 남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퇴사라는 게 그렇다. 마음을 먹었을 땐 정말 나갈 거라 다짐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 질러 버렸을 땐 그 이후가 걱정이 돼서 쉽게 그 결정을 굳히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회사에서 잡을걸 대비해 친척회사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그럴싸한 이유도 하나 준비해뒀다. 이로써 회사에서 나를 잡을 명분은 없었고 나의 퇴사는 확정됐다. 퇴사일까지 3주의 인수인계 기간이 주어졌는데 제품 개발도 어느 정도 진행이 돼서 담당자가 바뀐다고 큰 영향은 없을 듯했고 친척회사의 상황이 급해 빨리 입사해야 한다는 내 얘기도 반영이 된 결과였다.

지금까지도 그 3주간의 시간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마음 편했던 시간으로 남아있다. 나갈 날을 받아놔서 그런지 흡사 말년 병장 같은 기분이었는데 그 무섭던 상무님도 어느 정도 감당이 됐고 회사에 가기 싫어 일요일 저녁만 되면 미쳐버릴 것 같았던 기분도, 하루하루 지옥 같던 출근길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처음 느껴보는 퇴사자의 기분은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조금 더 버텨볼 걸 그랬나'하는 마음이었는데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보이는 상황에서 이렇게 포기할 정도로 힘이 들었었나 싶은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하지만 알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밑도 끝도 없다는 걸.

당시의 내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그 업무로 인해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 걸어가 보는 길이라 두렵고 겁이 났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 와서 되돌릴 순 없기에 내 선택에 후회는 남기지 말자 다짐했다.


- 2부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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