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습니다. #2

사표를 던지고

by J브라운




직장인이라면 분명 자신이 퇴사하는 모습을 한 번쯤은 상상해 본 적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 나날이 심해지는 상무님의 압박에

그만하시라고,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큰 소릴 치며 퇴사하는 모습을 종종 상상해 보곤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 같은 월급쟁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렇게 혼자 상상하는 것으로 잠시나마 은 위안을 얻는 것뿐이었고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탄산 200% 사이다


신입사원 시절 회사에 나이는 나보다 1살 많지만 경력은 3년 이상 차이나는 여자 선배가 있었는데 평소 조곤조곤하면서도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해 평판이 상당히 좋았다. 나이도 비슷하고 나와 집도 가까워서 회식 후엔 종종 함께 집에 가며 친하게 지냈던 이 선배는 어느 날 갑자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사표를 던져 사무실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입사 2년 차였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 이제 막 지나 식곤증에 사무실이 무척이나 조용했던 날로 기억한다. 고요한 사무실에서 갑자기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는데 그 주인공은 부장님과 이 선배였다. 두 사람이 부장님 자리에서 업무 얘길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큰 소리가 났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던 나는 이 적응 안 되는 분위기에 바짝 긴장이 돼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잠시 소강상태였던 언쟁이 태풍처럼 몰아치더니 부장님의 "이런 식으로 일할 거면 나가"라는 한 마디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알겠습니다.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맞받아치며 부장님 책상에 사원증을 '탁' 놓고 돌아서는 선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사무실은 적막 그 자체였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렇게 멋지게 사표를 던진 료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때 이 선배를 퇴사하게 만들었던 부장님은 몇 년 후 평소 그렇게도 바라던 임원(상무)으로 승진을 하셨는데 이 분이 바로 내가 퇴사를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바로 그 상무님이라는 것이다.


퇴사 준비하기


1부에서 얘기한 이유들로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 상무님께 시달릴 때면 고개를 푹 숙인 체 '확 한번 들이받고 퇴사해버려?' 하는 생각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곤 했었다.

그러나 그럴 용기도 배짱도 없었던 나는 언제나 마음만 그랬을 뿐 현실에선 상무님께 뭐라 말대꾸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상무님 책상에 멋들어지게 사원증을 '탁'놓고 돌아섰던 선배의 모습이 생각나곤 했다. 정말 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하지만 나는 그 선배가 아니었고 퇴사를 결심하고 나니 현실적인 생각이 뒤 따랐다. 아직 이직할 회사를 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혹시도 정말 큰 용기를 내 선배의 전철을 밟게 된다 좁은 이 업계에 소문이 돌아 결코 나에게 이로울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나가더라도 마지막은 서로 웃을 수 있는 엔딩을 비하기로. 지금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여전히 만족스러웠을 회사였고 마음이 잘 맞아 친하게 지내는 선배, 동기, 후배들이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좋은 기억을 가져가고 싶었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퇴직사유는 전편에서 얘기한 거짓말, 바로 친척회사로의 직이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고 가족이기에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

실제 회사에 퇴직 의사를 밝히고 그 사유로 이 얘길 꺼냈을 때 팀장님도, 인사 담당자도 강하게 날 붙잡지 못했다. 이미 갈 곳을 정해놓고 나가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사적으로 친했던 동료들 몇몇은 알고 있었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차마 이 사람들까지 속일 수는 없어 사실대로 얘길 했었는데 다행히도 내가 나가는 그날까지 비밀을 잘 지켜줬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마지막 출근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퇴사 전날 내 송별회가 있었는데 동료들이 권하는 술을 거절하지 못하고 계속 받아마셨던 나는 결국 잔뜩 취해버렸다. 집에 어떻게 갔는지 제대로 기억도 안 났던 그날. 다음날 술이 덜 깨 새빨간 얼굴로 출근을 해 마지막으로 짐 정리를 하는데 뭔가 기분이 묘했다.

몇 달간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음에도 마지막이라는 시간이 주는 감정은 '이제 끝났다'라는 안도감이나 후련함 전부가 아니다. 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마음을 뒤로한 채 짐을 싸서 나오니 동료들이 밖에까지 배웅을 나와줬다. 께 입사해 오늘까지 쭉 함께 한 동기, 입사 때부터 형처럼 날 잘 챙겨줬던 선배,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내게 상담을 요청하던 후배까지.. 이들과 한 명씩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려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졌는데 그중 마음속을 가장 크게 채우고 있던 감정은 단연 아쉬움이었다.


최근 몇 달간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퇴사를 하게 됐지만 처음 직장인이 되어 지금까지 6년을 다녔던 이곳.

내 이름이 새겨진 명함, 항상 목에 걸고 다녔던 사원증, 회식, 워크숍 등 직장인으로서의 첫 경험들이 모두 이곳에 있었다. 3년 다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그렇게 아쉬웠는데 6년을 다닌 이곳을 떠나는 마음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이었는지도 른다.


백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난 백수가 됐다.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 대낮에 사무실을 나와 텅 빈 집에서 짐을 풀고 있으려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퇴사만 하면 홀가분하고 뭔가 후련한 마음이 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더 정확히는 그런 감정을 느껴볼 새도 없이 그새 불안함과 막막함이 밀려오기 시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의 난 그 힘든 상황을 벗어나는 데에만 집중했을 뿐,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까진 크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 하나 갈 곳 없겠어?'라는 안일했던 생각은 퇴사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나에게 벌써부터 무언의 압박감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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