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책 한 권 이상 읽기가 목표인 내가 주로 찾는 도서 장르다. 카페에서 향긋한 커피 한잔 마시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다 보니 이 두 장르를 자주 찾게 되는데 또 외국 작품은 뭔가 나와 정서가 맞지 않아 꼭 국내 작품만 보곤 한다. 번역된 책을 읽다 보면(그나마 아시아 작품은 괜찮지만) 뭔가 문체도 딱딱하고 정서도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어 쉽사리 공감하지 못하는 게 그 이유다.
이런 내가 얼마 전 '정의란 무엇인가'의 작가인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게 되었다. 예전에 아내가 선물로 받은 책이었는데 오랜 시간 책장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던 이 책을, 마치 언젠가는 끝내야 할 숙제를 하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한 장 한 장 읽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딱딱한 문체, 어려운 용어와 내용으로 몇 장 읽지 않았음에도 성경책을 읽는 것처럼 자꾸만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이고야, 내게 이런 전문적인 책은 여전히 부담스럽긴 하다.
그렇게 꾸역꾸역 쏟아지던 졸음을 참고 읽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초반부가 지나면서 조금씩 책에 집중이 되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저자는 어려운 얘기를 반복적으로 들려줌으로써 이 책에 적응하도록 도와주고 있었고 그로 인해 이 두꺼운 책을 이틀에 걸쳐 다 읽을 수 있었다. 읽고 나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그리고 살아가야 할 이 사회의 공정이라는 가치에 대해.
공정하다는 착각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우리나라나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개인이 사회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고 그 능력에 의해 부와 권력을 쥐게 되는 능력주의 사회다. 그리고 이 능력주의 사회의 밑바탕에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드러나는 자신의 능력으로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사회. 하지만 책에서 작가는 묻는다. 이 기회는 정말 공정하게 주어지는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능력주의 사회는 정말로 공정한 것인가.
미국의 대입 수학능력 시험이라 할 수 있는 SAT 점수는 응시자 집안의 경제적 수준과 관련성이 높다고 한다. 집안의 소득이 높을수록, 부유하고 고학력인 부모의 자녀일수록 점수가 높다. 그런데 이건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부모가 고학력일수록, 경제력이 탄탄할수록 자녀의 수능점수가 높아지는 경향을 띤다. 대학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가기 직전의 관문이다. 이 관문에 들어서기까지 무엇보다 부모의 경제력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과연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물론 개인의 노력을 폄하할 수는 없다. 아무리 부모의 지원이 짱짱하다고 해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으니까.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런 노력들이 본인의 성공에 대해 가족을 포함, 주변의 지원은 배제한 체 오직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 낸 것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고 이러한 인식과 성공이 사람을 오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실패한 사람은 자존감을 잃고 극심한 패배주의에 빠지게된다. 이로 인해 사회적 긴장감과 위화감이 조성되고 이는 사회의 균열로 이어져 결국 포퓰리즘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공정한 경쟁이라고 하지만 개개인의 경제적 차이로 인해 사실은 전혀 공정하지 않은 이 능력주의 사회에서의 경쟁. 작가는 부모의 경제력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재능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재능.
육상선수 누구나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연습하지만 누구나 우사인볼트처럼 빠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노력과는 별개로 이처럼 재능의 차이는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물론 이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개인의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재능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결국 개인의 능력 차이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일이다. 재능의 유무를 고려한다면, 이런 경쟁이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지.
예전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태어났더니 아빠가 이건희면 어떤 기분일까?" 라거나 농구를 좋아하던 내가 중3 이후로 성장이 멈춰버린 작은 키를 보며 "내가 흑인이었음 벌써 덩크는 하고도 남았지!"라고 가볍게 툭 뱉었던 얘기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린 나이였지만 전혀 공정하지 않은 이 사회에 대한 아쉬움이, 나에겐 없는 재능에 대한 부러움이 그때부터 이렇게 표출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그러함에도
하지만 이 경쟁 자체를 불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출발점이 다르긴 하나 기회의 평등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는 분명 공정한 경쟁이다. 지금과 같은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다. 하지만 출생과 동시에 주어지는, 절대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요인들 때문에 경쟁은 시작부터 불평등해진다. 부모의 경제력, 뛰어난 재능과 같은 것들은 개인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얘기한다. 이런 불공정한 경쟁에서의 패자들도 존엄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이것이 이 불공정한 사회의 대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대안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렇기에 더 안타까울 뿐이다.
끝맺음
이 책을 읽고 그간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것들(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아닌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이미 오래전부터 기정사실로 되어 버렸다는 것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능력주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이미 이 사회를 만들어 놓은 엘리트 계층이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더욱 능력주의의 공정함을 외치면서 본인들의 위치를 공고히 할 것이라는 점을 알기에, 또한 능력주의 사회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기에 더 입맛이 쓰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역시나 노력하는 것, 이것 하나밖에 없다.
출발점이 다르다고 시작도 해보지 않고 포기해 버리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니까. 이 비유가 맞을진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빠른 발을 가지고 있던 토끼도 결국은 느린 거북이에게 지지 않았던가. 토끼의 빠른 발과 같은 재능을 따라잡을 수 있는 건 꾸준한 노력뿐이다. 그리고 분명 기억해야 할 건, 경쟁에서 졌다고 자존감을 잃고 패배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의 노력과 재능이 부족했을 뿐이지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내가 실패했다는 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쉽지 않겠지만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나 또 도전하면 된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에겐 이 방법밖에 없다.
역시나 이런 책은 너무 어렵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읽고 나니 뭔가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래서 책은 다양하게 읽는 게 좋은 건가 보다.하지만 이번엔 이 책을 읽느라 머리가 제법 아팠으니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로 한 권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