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현관으로 나와 몇 발자국만 걸으면 바로 아파트 뒤로 우뚝 솟아있는 산이 보이고 근처에 생태공원도 있어서 평일 저녁이나 휴일에 산책하러 나가기에 좋다.
그리고 산속에 있다 보니 정말 조용하고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봄의 푸르름,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산 등 계절이 오고 가는 게 선명하게 보여서 좋다. 그래서일까? 결혼 전까지 서울에서 20년을 넘게 살았던 내가 결혼을 하면서 이곳으로 이사온지 10년이 되어 가는데 처음 우려와는 달리 여기가 너무 좋아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그런 이곳에도 다른 여느 곳처럼 길냥이들이 많다.
아파트 주변의 화단, 지하 주차장 등 곳곳에서 녀석들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예전 밤에 집 주변에서 들리던 꼭 아기 울음소리 같던 고양이 소리는 괜스레 꺼림칙하게 느껴지기도 했었고 밤에 빛을 받아 유난히 빛나던 고양이 눈을 마주할 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기도 했었다. 그랬던 내가 회사에서 밥을 먹는 길고양이를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냥이가 아닌 이상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길냥이들은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데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씩 다가가면 이 녀석들도 이런 마음을 아는지 천천히 자신의 곁을 내어주기 시작한다. 회사에 있는 길냥이도 그랬다. 그 작은 몸에 나의 손이 닿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그렇게 친해진 길냥이는 이제 스스럼없이 다가와 배를 보이며 발라당 드러눕는다. 고양이가 자신의 약점인 배를 보이며 눕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에 나를 받아들여준 녀석이 너무 고마울 뿐이다.
귀염둥이 레오
집 근처에서 만나는 길냥이들은 워낙에 경계심이 많아 내가 쭈그리고 앉아 천천히 다가가려 해도 조금만 가까워졌다 싶으면 그냥 후다닥 도망가 버린다. 게다가 집 주위에서 이 녀석들을 만나는 시간은 대부분 퇴근 후인 저녁이어서 녀석들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언제 이 녀석들을 만날지 몰라 저녁에 산책을 나올 때면 츄르(고양이 간식)를 하나씩 들고 나오는데 아쉽게도 아직까진 이 츄르를 맛본 녀석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저녁을 먹고 아내와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길냥이 한 마리를 만났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 화단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려 봤더니 치즈 길냥이 한 마리가 스윽 지나가는 것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너무 작고 예뻐서 나와 아내는 '야옹'하고 길냥이를 불러봤다. 그랬더니 그간 봐왔던 길냥이들과는 다르게 우리의 목소리에 치즈냥이 반응을 했다. 이게 웬일인가 싶어 우리가 계속 '야옹'하고 부르자 이 치즈냥은 결국 화단에서 나와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던 치즈냥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냄새를 맡도록 해봤다. 치즈냥이 코를 내밀어 냄새를 맡더니 곁으로 다가오진 않고 그냥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집 근처에 있는 길냥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된 건 처음이라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이 녀석이 멀어지기 전에 잽싸게 사진을 찍었다. '야옹'하고 불렀더니 치즈냥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앉아 잠시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흡사 '그래, 한 장 잘 찍어봐' 하는 듯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자 녀석은 다시 몸을 돌려 화단 속으로 사라졌다. 참 웃기는 녀석이다.
그 표정 뭔데~
집에 와서 사진을 봤더니 참 예쁘게 잘 나왔다. 중성화를 했는지 귀 커팅이 되어 있고 눈을 동그랗게 뜬 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던 녀석. 이 사진을 보고 있으니 작년 말에 사라진 회사 길냥이가 생각났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 나타나 객식구가 되었다가 또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린 녀석. 그 녀석도 치즈냥이었는데 함께 있었다면 왠지 딱 이 정도 덩치가 되어있을 것 같았다.
어디에 있는거니
회사 창고엔 아직도 이 녀석이 사용했던 스크래쳐, 숨숨집, 화장실, 식기 등이 그대로 있다. 집에 돌아오지 않은지 5달이나 되었기에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리고 왠지 선뜻 치워지지가 않아 그냥 그렇게 두고 있다. 정말 이 녀석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이 물품들을 볼 때마다 바래본다. 다시 나타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어디에서든 건강히 잘 지내고 있기를. 많은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를 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