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할 때쯤이었나? 갑자기 엄마는 딸이 없어서 외롭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삼 형제 중에 그나마 부모님께 살갑게 굴던 막내가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였을까. 한 번은 외롭다 말씀하시며 눈물을 보이신적도 있어서 많이 당황을 했었다. 나도 아들이지만 정말 아들들은 엄마 마음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라 생각한다. 아니, 알 수가 없다고 해야 맞으려나. 내가 딸로 태어났다면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저 엄마에게 더 잘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지만 결혼 후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조금씩 소원해지는 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안부전화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서운한 목소리에 죄송스럽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내 주위에는 없는, 딸 같은 며느리들의 얘길 어디서 그렇게 듣고 오시는지 마냥 부럽다고 하시는 모습엔 나도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근데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엄마는 그렇게 자주 얘길 들으신다는데 왜 난 한 번도 그런 딸 같은 며느리 얘길 들어본 적이 없을까.
작년 엄마도 칠순을 넘기시면서 왠지 모르게 확 나이를 드셔 버린 것 같은 느낌에 요즘 엄마를 볼 때면 코끝이 찡하곤 하다. 근 2년간은 코로나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요즘은 코로나도 조금 안정세로 들어서고 해서 오랜만에 아내와 엄마를 모시고 밖으로 식사를 하러 나왔다. 드시고 싶은 거 없으시냐는 물음에 아들, 며느리랑 나가서 먹는 거면 뭐든 좋다 하시는 어머니의 대답을 들으니 너무 죄송스러워 목이 잠기는 것 같았다. 물론 코로나가 있긴 했지만 이걸 핑계 삼아 부모님께 더 소홀했던 건 사실이니까. 정말 불효자가 따로 없다.
아빠는 주말에 일이 있으시다고 해서 엄마만 모시고 나왔다. 그래도 아빠는 이런저런 모임 활동을 많이 하셔서 자주 나가시는 편인데 엄마는 교회 아니면 거의 집에만 계신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교회 모임도 많이 축소되고 제한이 되다 보니 그간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예전엔 엄마도 산에 자주 가시곤 했는데 이젠 힘이 드셔서 등산도 못 가신다 하셨다.
휙휙 지나가는 엄마의 시간이 정말 너무나 야속하다.
주말 아침 본가에 들러 엄마를 모시고 의왕에 있는 백운호수로 나왔다. 차로 한 20분 정도를 달렸을까. 긴 터널을 하나 지나고 나니 눈앞에 여름의 푸르름이 펼쳐졌다. 어느새 잎이 풍성해진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산이 이제 정말 여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따 푸르다잉~."
전남 영광이 고향인 엄마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한 마디 하셨다.
생각보다 차가 막히지 않아 식당에 일찍 도착해 한산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로 이동해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오랜만에 엄마와 수다를 떨었다. 결혼 전에도 그랬지만 난 엄마와 참 많은 얘길 한다. 어려서부터 내가 딸 역할을 해주길 바라셨던 엄마의 기대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사춘기 때를 빼면 주제를 불문하고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했었다.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요즘은 아빠와대화가 많이 없어서 집이 참 조용하다고 하셨다. 하긴 집에 가보면 아빠는 항상 인터넷으로 뭘 하시거나 TV를 보고 계셨고 (그것도 UFC)엄마는 집안일을 하시거나 아빠와 TV로 드라마를 보시면서도 딱히 대화가 없으셨다. 무뚝뚝한 아빠의 성격도 아마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노년부부의 전형적인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엄마도 참 외로우시겠다 싶어 반려동물을 키워보시는 거 어떠냐고 여쭤봤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싫으시다 하셨다. 왜냐고 묻는 나에게, 손도 많이 가고 힘들어서 못 키운다 하시는 엄마.
그래서 고양이는 손이 많이 안 간다고, 화장실도 알아서 모래에다 싸고 덮고 목욕도 1년에 몇 번 안 시켜줘도 되며 독립적이라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니 괜찮을 것 같다는 내 얘기에 엄마는 밑도 끝도없이 고양인 배신을 해서 싫다고 말씀을 하셨다.
"고양이가 배신을 한다고요?"
확실히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친근한 동물이 아니다. 하긴 내가 20대 때만 해도(벌써 20년 전이다)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많이 보진 못했었다. 엄마가 말씀하시는 고양이의 배신이라는 것도 아마 고양이가 기분이 언짢을 때 갑자기 사람을 할퀴거나 휙 도망가 버리는 모습을 보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라고, 고양이가 무슨 배신을 하냐며 이 아이들도 정말 귀엽다고 말씀을 드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고양이는 아니라 하신다.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 나와 백운호수 둘레길을 걸었다. 바람도 선선하고 햇살이 구름에 가려져 걷기 딱 좋은 날씨였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둘레길로 들어가는데 공연을 하는 어르신 밴드와 마스크를 벗은 채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이제 정말 그 긴 코로나의 어둠을 지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야외에서 마스크 하나 벗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상쾌한지.
엄마와 둘레길을 걸으며 반려동물에 대해 한 번 더 말씀드렸더니 지금은 됐고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얘기하겠다 하셨다. 그때 되면 꼭 말씀하시라는 내 말에 알았다 하시며 웃으시는 엄마. 그런 엄마의 양옆에서 아내와 나는 엄마의 팔짱을 한 짝씩 끼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차장에 거의 도착했을무렵 길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카오스 냥이었는데 이미 손을 많이 타서 사람들이 만지는데도 가만히 있던 녀석. 나도 은근슬쩍 다가가 손을 내밀어 냄새를 맡게 한 후 턱과 볼을 살살 긁어줬더니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 이내 눈을 지그시 감아버리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엄마가 그걸 보시더니 고양이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고, 꼭 강아지 같다며 귀엽다고 깔깔 웃으셨다. 옆에 보니 이 녀석 것으로 보이는 집과 식기가 있었다. 요즘은 길고양이를 돌봐주시는 분들이 많아 이 녀석도 힘겨운 길에서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내 손길이 제법 맘에 들었는지 고대로 배까지 보이며 옆으로 드러누워버린 녀석. 정말이지 고양이의 이런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한참을 쓰다듬으니 엄마가 한 마디 하신다."그만 만지고 손 씻고 와야~."
옆에서 아내도 이제 그만 손이나 씻고 오라 해서 아쉬운 마음에 궁디팡팡을 해주고 손을 씻으러 갔다.
돌아와 엄마에게 고양이 얼마나 예쁘냐고, 냄새도 안 나고 저렇게 애교도 잘 부린다 말씀드렸더니 여전히 배신을 해서 별로라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