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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Jul 01. 2022

너였구나

나 나쁜 사람 아니야




요즘 들어 회사에서 케어하고 있는 길냥이 레오의 외출 시간이 부쩍 길어졌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모습이 안 보일 때도 있는데 이 녀석도 이제 성묘가 돼가면서 자신의 영역을 계속 넓혀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여전히 치즈냥을 만나는 날에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냥들의 주먹다짐이 벌어지긴 하지만 어떻게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번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됐다.

다만 두 녀석 다 크게 다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

 

너였구나

레오의 외출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 허전하다 싶었던 요즘, 어딘가에서 레오의 밥을 먹고 가는 녀석이 나타났다. 건물 밖에 레오나 치즈냥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식기를 두었는데 어느 날 나가봤더니 웬 삼색냥 한 마리가 그곳에서 밥을 먹다가 내 인기척에 후다닥 도망가는 게 보였다. 어찌나 잽싸던지.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녀석인지 전부터 몰래 밥 동냥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먹던 건 다 먹고 가지 나 때문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해졌다. 저렇게까지 도망가는 걸 보면 여태 사람 손은 한 번도 타지 않은 녀석일 것 같았는데 본의 아니게 쫓아낸듯한 기분이 들어 미안한 마음에 그 녀석이 도망간 담벼락 쪽으로 사료를 가득 채운 식기를 하나 더 두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조금 기다려봤더니 웬걸, 도망친 줄 알았던 녀석이 담벼락 구멍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처음 마주하는 녀석이기에 난 저만치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녀석은 정말 살금살금 나오더니 귀를 쫑긋 세운체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먹으면서도 주위에서 작은 소리라도 들린다 싶으면 고갤 들어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던 녀석. 경계가 여간 심한 게 아니다.

그리고 난 그 이후 매일같이 녀석의 밥을 챙겨주고 있다.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녀석은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자신의 밥그릇 쪽에 와서 얌전히 앉아있곤 한다.


하지만 밥을 챙겨줌에도 여전히 경계가 심해 내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면 녀석은 몸을 뒤로 빼 버린다.  전엔 직접 츄르를 줘볼까 하는 마음에 츄르를 쥔 손을 쭉 뻗어봤는데 역시나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바닥에 츄르를 짜줬더니 그건 또 먹길래 점점 내 앞으로 가까이 츄르를 묻혀놔 봤는데 많이 가까워졌다 싶자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식빵 굽는 자세를 취했다. 혹시나 싶어 그 앞으로 츄르를 슬쩍 내밀어 봤더니 이 녀석, 그간 안 하던 하악질까지 하며 경계를 하길래 냉큼 손을 치웠다. 서운하긴 하지만 아직도 나를 밥 주는 사람, 그 이상으론 생각하지 않나 보다. 언제쯤 나를 안전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될까.

임신 중일까 출산을 한 걸까

그런데 이 녀석, 자세히 보니 젖이 많이 부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배도 제법 나와있는 게 지금 임신 중이거나 최근에 새끼를 낳았던 녀석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더 잘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얼마 전부턴 습식사료에 건사료를 섞고 북어 트릿까지 올려 밥을 차려주고 있다. 첨엔 잘 먹으려나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입맛에 잘 맞았는지 녀석은 마치 설거지라도 하 듯 바닥까지 깨끗하게 핥아먹고 있다. 볼 때마다 무척이나 뿌듯하다.

야무지게 손까지 사용하는 새침한 녀석

임신 중인지 출산 후 인지 알 수는 없으나 찾아보니 이 두 시기 모두 엄마냥이 예민해지고 경계  때라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조금 친해져 보겠다고 그렇게 들이댔으니 녀석도 얼마나 신경 쓰였을까. 당분간은 좀 떨어져서 밥만 잘 챙겨줘야겠다.

삼색냥아 미안, 내가 잘 몰라서 그랬어. 당분간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밥만 챙겨줄 테니 편하게 먹고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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