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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Jun 22. 2023

꼰대들의 수다

MZ세대 이해하기



얼마 전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졸업 후 사는 게 바빠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1년에 한두 번은 만나던 녀석들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거의 보지 못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술자리를 갖게 됐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과는 별개로 다들 배가 나오고 머리숱이 빠진 모습을 보니 우리도 정말 중년 아저씨가 됐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던 스무 살, 그 혈기왕성했던 나이에 만난 우리가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이런 모습으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길 하던 중 어쩌다 보니 대화의 주제가 MZ세대로 향하게 됐는데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 회사 후배들에 대한 뒷담화를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도 꼰대가 다 됐구나 싶은 마음으로 듣다 보니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고 신선한 얘기들이 많았다.


MZ세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친구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워라밸


공무원인 한 친구는 같은  MZ세대 후배 때문에 속이 터진다 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봤더니 그 후배가 핸드폰을 두 개 사용한다는 얘길 해줬다. 하나는 회사용, 하나는 개인용. 후배에게 왜 폰을 두 개나 사용하냐 물었더니 워라밸을 위해서라 답했다고 한다. 그 말에 우리가 물었다.


"그래서 그게 뭐가 문젠데?"


"폰이 두 개인건 괜찮다 이거야. 근데 얘가 퇴근할 때 업무용 폰을 전원 딱 꺼서 회사에 두고 간다니까. 개인 폰은 번호를 안 알려줘서 퇴근하고 일 생기면 연락을 할 수가 없어요."


업무용 개인용, 이렇게 폰을 두 개 사용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리고 퇴근 시간 이후엔 되도록 업무적인 연락은 하지 않는 게 맞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적인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친구는 작년 이태원 참사 때만 해도 비상 상황이라 직원들 하나하나 연락해서 괜찮은지 확인을 하는데 그 후배만 개인 폰 번호를 몰라 주말 내내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나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였다. 업무 시간 외나 휴일이라도 불가피하게 업무지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업무 지시를 내리는 입장에서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리는 그 후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친구의 이 얘기는 컬처쇼크, 그 자체였다.  


메신저 천국


일반 회사에 다니는 한 친구는 회사 관련 모든 연락을 카톡으로만 하려는 후배 때문에 스트레스라 했다. 물론 껄끄러운 얘길 해야 하는 상황엔 전화보다 메신저가 더 편할 때가 있다. 부담이나 불편함도 덜 하고. 하지만 갑작스럽게 결근을 하는 상황에서도 전화가 아닌 카톡으로 연락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며 며칠 전 이 후배와 나눴던 카톡 대화를 보여줬다.


"차장님 제가 갑자기 아침부터 배가 너무 아프고 자꾸 설사가 나와서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병원 갔다가 오후엔 출근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보네. 알았으니까 일단 병원부터 잘 다녀오고 상황 봐서 연락 줘."


"차장님 병원을 다녀왔는데도 증상이 그대로네요. 오후엔 출근하려 했는데 오늘은 집에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내일 출근하도록 하겠습니다."

"아픈데 어쩔 수 없지. 걱정 말고 푹 쉬어. 내일 보자."


친구는 아침에 출근하고 있는데 첫 번째 메시지가 왔고 점심시간쯤 두 번째 메시지가 왔다고 했다.




나도 요즘은 전화보다 메신저를 더 많이 사용한다. 전화는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뭔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사내용이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를 이용해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사무직의 경우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서 보내기 때문에 메시지 확인도 빨라 전화와 비교해도 업무처리 속도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내가 신입이었을 땐 타 부서와의 연락은 대부분 전화로 했었는데 종종 아쉬운 얘길 해야 하거나 부서 간 입장차이로 문제가 생겼을 땐 이 놈의 전화통화가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사내 메신저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거래처와도 카카오톡으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물론 정말 급한 일이라면 전화통화를 하게 되지만 그게 아닌 이상 전화보단 심적인 부담이 덜해서 확실히 편하고 좋다.


하지만 근태와 관련해서는, 특히나 갑자기 출근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전화를 해 주는 게 예의 아닐까. 물론 MZ세대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전화보단 메신저로 연락을 하는 게 익숙하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회사에서 근속연수가 많이 차이나는 상사에게까지 또래에게 하듯 메신저로 결근소식을 전한다는 건 글쎄, 이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윗 세대에게는 자칫 예의 없다는 느낌을 주진 않을는지.

 

아,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꼰대인 건가.




이 얘길 듣고서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럼 그 후배한테 얘기해. 난 옛날 사람이니까 앞으로 근태 같은 건 카톡 말고 전화로 얘기해 달라고."


그랬더니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요즘은 애들 무서워서 뭐라 말하기가 겁나. 말해봤자 그냥 꼰대라 생각할 거 뻔하고."


막내 어딨니?


한 친구는 회식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먹기만 하는 후배가 불만이라 했다. 친구는 종종 고깃집으로 회식을 가는데 그 후배는 고기를 굽거나 주문 같은 일들은 일절 하지 않고 끝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먹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래도 앞에서 선배랑 한 참 위 과장, 차장이 고기 굽고 있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할 만도 한 한 번을 안 해! 진짜 가만히 앉아서 먹기만 한다니까."


솔직히 이 모습이 잘 상상이 안 됐다. 물론 나이가 적고 직급이 낮다고 무조건 이런 걸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윗사람들이 그러고 있을 걸 상상하면 가만히 있는 게 더 불편하다. 서툴러도 내가 하는 게 낫지.


"실컷 고기 구워 놓으면 따박따박 먹으면서 한 번을 안 해. 술도 자작하는데 술병 비면 더 시키면 될걸 아무말 없이 그냥 테이블 구석으로 슬쩍 밀어놓기만 한다니까."

친구가 핏대를 세우며 얘기했다.


"그 후배가 부끄러움이 많은 거 아냐?"

장난인 듯 살짝 후배 편을 들어 얘기하는 다른 친구에게 그 녀석이 말했다.


"야, 걔 지 동기들이랑 술 먹는 거 봤는데 난리도 아니었어. 회식할 때만 그냥 모르는 척 가만히 있는 거라니까."


그 얘기에 내가 물었다.

"나중에라도 얘기는 해 봤어? 회식 때 이런 게 좀 안 좋아 보이더라, 불편하더라도 윗사람들 있을 땐 너도 같이 좀 하자. 아, 이런 말하면 또 꼰대라 할라나."


"그얘기하면 꼰대라는 소리밖에 더 듣겠냐. 애초에 말해서 들을 놈이었으면 그렇게 하지도 않았을 걸? 그냥 개념이 없는거여."


정말 어렵다.


대화가 필요해


물론 모든 MZ세대가 이렇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우리의 예전 모습과는 많이 다른 MZ들의 모습에 여전히 적응을 하는 중이겠지.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도 어른들은 얘기했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요즘 애들은 지밖에 모른다니까."


친구들과 오랜만에 갖는 술자리에서 회사 후배들 얘길 하면서 참 많이 웃었다. 우리가 신입이었을 때도 지금처럼 회사 선배, 상사들의 맛있고 재미난 안주거리였으려나. 역시 나일 먹으니 꼰대가 되는 게 맞다.


그러나 이 유쾌한 시간 속에서 들었던 한 가지 생각. 그건 바로 이 후배들과 대화가 거의 다는 점이다.


우린 으레 짐작했다. 저 어린 녀석들에게 한 마디 해봤자 꼰대라는 말 밖에 더 듣겠냐고. 말해서 들을 거였으면 애당초 저러지도 않았을 거라고. 그래서 후배들과의 대화를 그냥 포기해 버렸다.

나 역시도 몇 년 전 자영업을 하면서 함께 일했던 20대 초, 중반의 MZ세대들을 겪으며 느낀 것들을 잊고 있었다. 개인주의가 있긴 하지만 이기적이진 않고 예의 바르던 모습과 합리적인 걸 선호하며 자신의 몫은 어떻게든 해내려 하던 책임감 있는 모습을.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면 후배들도 조금은 받아주지 않을까. 적정선을 넘지 않는다면 이런 대화는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꼰대취급받는 게 두려워 매번 참고 넘어간다면 결국 자신만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쌓이는 스트레스는 마치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후배 앞에서 언젠가 '펑' 하고 터져버릴지 모르니까.


그러고 보니 장사할 때 직원들과 얘기하며 많이 웃었던 게 생각난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우리에겐 역시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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