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 데다가 뒤끝까지 없다니. 이런 멋쟁이가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우린 종종 헷갈려한다. 진짜 쿨한 사람과 쿨하다는 허울 뒤에 숨어 상대방의 마음을 후벼 파는 말들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을.
So cool
얼마 전 SNS에서 이런 사연을 봤다.
3년 전 글이었는데 글쓴이는 결혼 3년 차 여성이었고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고 있어 이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글이었다. 글쓴이가 말하는 남편의 이혼 사유는 싸우는 것에 지쳤다는 것이었다. 글쓴이는 자신이 쿨하고 뒤끝 없는 성격에 다혈질 기질이 있어 별거 아닌 일에도 남편과 싸움이 나면 욱해서 쏘아붙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쏘아붙일 땐 심한 말도하는데 자신과 반대 성향의 남편은 묵묵히 그걸 다 받아줬다고 했다. 먼저 사과하는 쪽도 남편이었고. 화해하고 나면 남편은 싸우더라도 상처 주는 말은 하지 말자고 했는데 글쓴이는 이게 고쳐지지가 않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던 어느 날 싸우고 난 뒤 남편이 조용히 이혼 얘길 꺼냈다 했다.
"아니 그럼 싸울 때 얘기하던가 대체 왜 다 풀고 나서, 이제 와서 그래?"
남편의 이혼 얘기에 글쓴이가 물었고 남편은 지쳤다고 답했다 한다.
이 글의 마지막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본인이 잘못한 건 알지만 남편이 미리 그 정도로 힘들다 말해줬다면 자신이 노력했을 거라고.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씁쓸해졌다.
쿨하다는 것
나는 B형이다. B형이라 하면 대부분 돌아이를 생각하는데 난 이런 성격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굳이 혈액형으로 따지자면 A형에 가깝다. 소심하고 마음에 잘 담아두고. 그래서 아내도 종종 얘기한다.
"오빠 B형 아니지? A형이지!!"
이런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 은근히 쿨한 구석이 하나 있다. 생각해 보니 그건 '인정'에서 비롯되는 것 같은데 난 사람들의 조언이나 지적(어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사람들이 잘 못하는 것들 중 하나가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건데 난 내 생각이나 행동이 잘못됐을 때 이를 얘기해 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잘 받아들인다.
회사에서도 내가 담당하는 업무가 뭔가 잘못됐을 때 위아래 상관없이 누구라도 이를 얘기해 주면, 그리고 그게 충분히 논리적이어서 반박할 게 없다면 두 말 없이 받아들인다. 괜히 억한 마음에 상대방의 말 꼬리를 잡거나 막무가내식으로 내 의견을 주장하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다. 그래서일까? 회사에서 사람들은 내게 종종 쿨하다 얘기한다.
물론 난 쿨한 사람은 절대 아니지만, 이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얘길 하다 보면 친구들과 의견이 부딪힐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내 생각이 잘못됐다 싶으면 바로 "아 그렇네, 미안."이라얘기한다.이런 모습 때문인지 예전에 별로 친하지 않은 누군가가 나에게 "넌 자존심도 없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게 자존심과 무슨 상관인 걸까.
착각
하지만 종종 사람들은 쿨하다는 걸 '할 말 다하는 솔직함'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을 쿨하다 말하는 사람들은 습관처럼 '뒤끝이 없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자신은 쿨해서 면전에서 할 말 다 하기 때문에 뒤끝이 없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앞에서 할 말 다해 놓고 뒤끝까지 있으면 그건 정말 너무한거 아닌가?
소심한 성격의 난 정말 크고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혼자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꽤나 부럽다. 그런데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이건 쿨한 게 아니라 그냥 자신감 있고 당당한 거다.
지인 중에 본인 입으로 자신을 쿨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이 사람은 성격이 솔직하다. 감정을 숨기지 못해 얼굴에 다 티가 나고 대화 중에도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데 한 가지 단점은 그 표현이 꽤나 거칠고 날카롭다는 거다.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건 좋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함에 있어 언어의 선택은 신중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고 때론 그게 상대방과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비록 언쟁으로 나아가지 않더라도 그의 이런 말투는 날카로운 비수로 상대방의 마음을 후벼 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한 차례 말 폭풍이 지나고 나면 그는 습관처럼 말했다.
"내 말이 과했다면 미안한데, 그래도 나 뒤끝은 없다."
그의 이 얘길 들을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
'아니그럼 그렇게까지 퍼부었는데 뒤끝이 있겠냐?'
real cool
이건 쿨한 게 아니라 예의가 없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다.어떻게 해서 그는 자신을 쿨하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쿨 하다는 건 인정, 포용, 배려와 같은 마음가짐에서 나오는것이지 이처럼 쿨하다는 허울뒤에 숨어 날카로운 비수로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게 아니다.
솔직함이 쿨한 거라고?
솔직함은 좋지만 그렇다고 생각나는 대로, 날 것 그대로 표현하고 내뱉는 건 인격의 문제다. 누구나 감정이 격앙되면 험한 말을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난다고 그 말들을 그대로 입에 담진 않는다. 한 번 더 생각하고 걸러 최대한 부드러운 표현으로 바꾼다. 그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건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지만 종종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며 쿨하다 말한다. 참고 혼자 삭이는 거에 익숙한 나 같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인 걸까.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
SNS에서 본 사연의 글쓴이도 내 지인도, 이들은 자신
이말로 상대방에게 얼마나 크고 깊은 상처를 주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언제나 "그래도 난 뒤끝은 없다."라는 말로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말하던 그.
말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몸에 입은 상처보다 회복이 더디다. 언어라는 게 그렇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세상 무엇보다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가치 돋친 말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마음에 꽂혀 자칫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려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였다. 어느 날 난 이 말을 마지막으로 그 지인과의 관계를 끊었다.
"제발 부탁인데 말로 사람들한테 상처 좀 그만 줘요. 그거 정말 잔인한 거예요."
누군가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건 그가 처음이었는데 겁 많고 소심한 내가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감히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는 게, 그것도 상대가 나보다 연장자라는 게 주제넘은 일이었겠지만 그를 보는 내내 한 번쯤은 말해주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 그와 대면할 누군가를 위해서.
그 이후로 그를 만난 적은 없다. 용써가며 서로가 서로를 피했으니까. 그럼에도 가끔 생각나긴 하는데 마지막까지도 그 모습이 유쾌하진 않았기에 그저 예전과는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정말 쿨한 사람은 멋있다.
하지만 나처럼 쿨하지 못하면 또 어떤가?
찌질하고 혼자 마음속에 담아두더라도,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보단 훨씬 나은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