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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Oct 26. 2023

한 번 더 이직




오후 2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

이 시간에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게 정말 얼마만인지. 뜻하지 않게 주어진 1주일이라는 휴식시간. 이 시간에 이렇게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는 건 내겐 너무나도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이 휴식시간도 곧 지나가버릴 짧은 순간이라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해가 떴다를 반복하고 있다. 비가 오려는 걸까. 내게 주어진 1주일 중 이제 반을 넘겨버린 오늘, 조금은 떠들썩한 사람들의 대화소리와 그 속에 살짝 묻혀버린 음악소리를 들으며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나. 주위엔 나처럼 노트북을 켜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다들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우유부단 I의 또 한 번 이직


올해 7월 말, 6년을 다닌 회사를 이런저런 이유로 관두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했다. 퇴사의 이유를 명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건 나는 그 회사를 나오는 게 맞았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했고.

마흔을 훌쩍 넘긴 이 나이에 이직이 쉬울 리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뜻 내게 손을 내밀어준 고마운 이 회사. 하지만 난 이곳에서 두 달을 보내며 다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물론 내가 상당히 우유단한 성격인 건 잘 안다. 하지만 이 회사를 다닐수록 여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전 회사를 나오며 급하게 이직을 한 게 이유일 수도 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오라 하니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며 간 것도 사실이긴 하니까. 이렇게 조급함은 항상 사람의 시야를 가리고 깊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물론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무척이나 가까웠고 저녁 6시 정시퇴근이 일상인 이 회사. 야근을 한다 해도 1시간이나 한 날이 있었을까. 근무여건만 따진다면 나쁘지 않은 회사지만 업종 특성상 점점 시장이 작아져 성장 가능성이 낮았고 담당하고 있는 업무도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부장님도 그 일들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내 업무가 아님이 확실한 일들을, 지금도 왜 해야 하는지 납득을 못하고 있는데 이걸 10년 넘게 더 해야 한다고? 그리고 체계 없이 주먹구구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회사 시스템도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였고 결국 난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이 나이에 회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무턱대고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난 내 나름의 살 길을 만들었고 기회를 보다 회사에 조심스레 퇴사 얘길 꺼냈다. 회사에서 어떤 반응일지 수많은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차라리 한 달도 안 돼서 나간다고 하면 '우리 회사랑 안 맞았나 보네.' 하겠지만 두 달이나 잘 다니다가 갑자기 나간다고 하면 뭐라 생각할까? 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출근 때마다 온몸을 휘감는 갑갑함과 답답함은 조금이라도 빨리 여길 나가는 게 좋겠다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퇴사하겠습니다.


하나의 거짓말을 위해선 7개의 거짓말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기 마련이다. 안 좋은 상황일 때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고마운 회사. 그랬기에 난 이 회사에서의 마지막을 거짓말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솔직함이 언제나 최선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회사에는 그래야 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 후 총괄부장님께 퇴사를 하겠다 말씀드렸다. 그간 회사에서 느꼈던 점과 앞으로의 계획을 가감 없이 말씀드렸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부장님의 반응이 정말 의외였다.


"그래, 본인 인생이니 본인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어쩔 수 없지. 회사에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바로 대표님께 보고가 들어갔고 난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퇴사를 할 수 있었다. 퇴사 얘길 꺼내기 전까지 했던 수많은 걱정과 근심이 무색해질 정도의 깔끔한 퇴사였다. 퇴사날은 2주 후로 정해졌다. 나도 이직을 하게 됐다고 무턱대고 빨리 나가고 싶진 않았다. 회사에서 정해주는 날로 나가겠다 얘기했고 나가는 날까지 최대한 마무리는 잘하고 싶었다. 그게 이 회사에 대한 예의니까.


그리고 또 의외였던 건 퇴사 보고가 들어갔음에도 나를 따로 부르지 않는 대표님의 반응이었다. 퇴사보고가 들어가면 바로 불러서 얘길 하게 될 줄 알았는데 1주일이 지나도록 대표님은 날 부르지 않았다. 나갈 사람에겐 크게 미련이 없으신 건가. 불편한 마음으로 대표님을 마주하게 되는 시간들이었는데 그러다 퇴사 3일을 앞두고 점심을 먹고 오니 대표님이 잠깐 보자 하셨다. 드디어 올게 온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퇴사할 거라고?"


회사에 퇴사 얘길 꺼내고 10일이 지나고 나서야 마주하게 된 대표님의 첫마디였다.


"네. 정말 죄송하지만 좋은 기회가 생겨서 이직을 하는 게 낫겠다 생각했습니다. 회사에 폐를 끼치게 되어 정말 죄송하고 대표님 뵐 면목이 없네요."


진심이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들이 내가 납득을 못해 도저히 할 수 없겠다 싶었을 뿐이지 그 외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 같은 건 없었으니까.

내 얘기에 대표님은 아쉽다고, 오래 같이 일하게 될 줄 알았는데 몇 달 안 돼서 나간다고 하니 너무 아쉽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실하니까 어디 가서도 잘할 거라고, 그간 고생 많았다 말씀하셨다.


이 얘길 들으니 마음이 울컥했다.

아직도 그게 무슨 감정이었는지정확히 모르겠다. 미안함? 감사함? 염치없음? 정말 어떤 마음이었을까.


총괄부장님께서 내가 퇴사하는 날 점심은 송별회 겸 직원 회식이 있을 거라 말씀하셨다. 민망했다. 겨우 3달 일하고 나가는 직원에게 무슨 송별회란 말인가. 하지만 일정은 정해졌고 그렇게 내 퇴사날 점심은 전 직원들과 함께 하게 됐다.


식사를 하며 그제야 그간 대화가 거의 없었던 다른 부서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길 해 볼 수 있었다. 역시나 마지막이란 단어가 주는 감정은 단연 아쉬움이었다.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난 무엇보다 동료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한 게 아쉬웠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이곳에서 더 오래 일하게 됐다면 아마도 지금보다는 더 가까워져 있었겠지.


식사를 마치고 나와 회사로 걸어가는데 대표님과 이사님(사모님)이 뒤에서 나를 따로 부르셨다. 그간 고생했다며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한 번 맺어진 인연이니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얘기에 또 마음이 울컥해졌다. 기껏 3달 일하고 나가는 내가 이런 얘길 들을 자격이나 있는 걸까.


사무실로 돌아와 3시쯤 짐정리를 시작했다.

개인 짐이 많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담으니 작은 쇼핑백 하나로 충분했다. 점심을 먹고 오자마자 대표님은 자리를 비우셔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진 못했다. 대신 이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직원들과도 한 명 한 명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기분이 참 묘했다. 겨우 3달을 일했을 뿐인데 마치 몇 년은 일했던 회사처럼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지금껏 몇 번의 이직으로 그만큼의 헤어짐이 있었지만 이런 기분은 7년을 일한 첫 회사를 나올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몰랐는데 그새 회사에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요즘은 해가 짧아져 퇴근 시간인 6시만 돼도 날이 어둑어둑한데 퇴사날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날이 좋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또 다른 시작


새로운 회사엔 11월에 출근을 한다. 덕분에 오랜만에 1주일이 넘는 휴가를 얻었다. 사람이 간사한 게 시간이 지나면 그 당시엔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었던 것도 어느 정도 견딜만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오히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나 싶어질 때도 있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 회사를 다니며 불합리하고 조금은 쓸데없고 내 일이 아니다 싶었던 일들이 정말 그런 것들이었나 싶어지고 체계 없이 돌아가던 시스템도 그냥 생각 없이 적응하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건 지나고 나면 그때의 감정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내가 이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분명다.


이제 또 다른 시작 앞에 서 있다.

시작점에 서면 언제나 긴장과 걱정이 앞선다. 몇 번의 이직 경험이 있음에도 이건 피해 갈 수 없는 부분이다. 이번엔 많이 알아보고 신중하게 선택한 만큼 또 최선을 다해 적응해 가야겠지. 이전 회사에서 전 직원들과 마지막 점심을 먹으며 받았던 응원의 박수를 기억해야겠다. 웬일인지 이 박수가 지금의 내겐 무엇보다 큰 힘이 되어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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