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슈퍼맨

아버지

by J브라운


지난주 금요일.

오늘만 일하면 주말이라는 기쁜 마음으로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오전 10시를 넘겼을 무렵 아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먼저 전화를 잘하지 않으시는 아빠에게서 아침부터 걸려온 전화.


'무슨 일이실까?'


걱정 반, 궁금증 반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아빠."

"어 막내냐? 지금 잠깐 통화 돼?"

"네,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어 다른 게 아니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뜸까지 들이 아빠.


"너 티맵 쓰냐? 내가 다음 주 화요일에 티맵을 써야 하는데 핸드폰에 어떻게 깔고 사용하는지를 몰라서. 주말이나 월요일에 와서 설명 좀 해달라고."

"티맵이요?"


이어진 아빠의 말씀은 이러했다.

다음 주 화요일에 교회 분들과 당일치기 여행이 있어 교회 승합차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하필 내비게이션이 고장 났고 그래서 티맵을 사용하려는데 일행분들 중 누구도 사용법을 모른다고.


"저도 티맵 쓰고 있어요. 근데 주말은 시간이 안될 것 같고 월요일에 퇴근하고 들러서 알려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그럼 집에 와서 저녁 먹을 거지? 엄마한테 너 와서 저녁 먹는다고 얘기해 놓을게."

"네 그러셔요, 엄마한테 반찬 따로 뭐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려 주세요. 그럼 월요일에 갈게요."


이렇게 아빠와의 통화가 끝났다.


월요일 저녁


월요일 퇴근길 마트에서 잘 익은 수박 한 통을 사 들고 부모님 댁으로 갔다. 엄마는 예쁜 막내 왔다며 한우를 구워주셨는데 어쩐 일이신지 요즘 들어 부쩍 내게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막내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는 얘기와 함께. 형들하고 무슨 일이 있으셨나?


엄마가 준비해 주신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고 나서 아빠 핸드폰에 티맵을 깔고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사실 어렵진 않다. 처음 접하는 앱이라 괜한 어려움을 느끼실 뿐이지. 아빠도 설명을 들으시더니 "많이 안 어렵네." 하시며 바로 잘 사용하셨다. 그런 와중에 혹시나 싶어 여쭤봤다.


"근데 그 차에 핸드폰 거치대는 있는 거죠?"


아빠가 크게 당황하셨다.

"거치대? 음.. 몰라? 없나?"

"거치대 없으면 아빠 운전 하실 때 누가 옆에서 폰을 잡아줘야 건데요?"


내 얘기에 아빠는 예전에 작은 형이 갖다 준 거치대가 하나 있는 것 같다시며 주차장에 다녀오신다 하셨는데 얼마 후 빈손으로 그냥 돌아오셨다.

쿠팡으로 시켜도 지금 시간이 늦어서 내일 아침 일찍 도착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쩔까 하다가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홈플러스에 가서 사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홈플러스 가까우니까 금방 갔다 오죠."


그렇게 아빠와 나, 단 둘이 집을 나섰다.


마트 가는 길


집에서 홈플러스까지는 도보로 10분이면 가는 거리다.

생각해 보니 이 길을 엄마와는 결혼 전까지 종종 함께 갔다 오곤 했는데 아빠와 걷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길 뿐만이 아니었다. 아빠와 단 둘이 이렇게 걸어본 적이 언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금방 떠오르지 않았는데 그새 1주일이 지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빠와 함께 걸으며 아빠의 요즘에 대해 많은 얘길 나눴다. 올 1월부터 아빠는 사무직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셨다. 65세에 정년퇴직을 하시고 거의 10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하신 건데 사무실이 좀 멀긴 하지만 근무시간이 짧고 일도 어렵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다. 역시 사람은, 특히나 나이를 먹을수록 집에만 가만히 있는 것보단 밖에서 뭐라도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그게 더 건강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아빠를 보면 확실히 맞는 얘기다.


아빠의 가슴 한 켠에 들어간 지 1년이 된 심장박동기는 어떤지도 여쭤본다. 작년 6월에 아빠는 세 번째 심장수술을 받으셨다. 심장박동이 너무 느려 인공심장박동기를 삽입하셨고 어느새 1년이 지났다. 삽입하고 나서 생활에 불편함은 없다 하셨다. 몸에 뭔가 들어와 있다는 게 조금 낯설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맥박이 떨어지는 느낌은 없어서 안심이 신다고.


사실 심장박동기 삽입 전 아빠는 길을 걸으시던 중 어지럼증으로 쓰러지신 적이 있었다. 주위에 교회 분들이 함께 계셔서 다행이었지 정말 큰일 날 뻔했던, 위험했던 순간이었는데 심장박동기가 제 역할을 잘해주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러는 사이 마트에 도착했고 자동차 용품 코너에서 거치대를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조립을 하고 거치대 사용법을 알려드린 후 핸드폰을 거치대에 달고 티맵을 켜서 목적지를 검색하고 안내가 시작되기까지 쭉 한 번 시범을 보여드렸다. 한 2~3번 해 보시더니 "오케이. 이제 됐다." 하시는 아빠. 그제야 나도 마음이 놓여 부모님 댁을 나설 수 있었다.


슈퍼맨


모든 자식들에게 그러하듯 아빠는 어린 시절의 내겐 무엇이든 다 해내는 슈퍼맨이었다.


집에서 뭐가 고장 나면 뚝딱뚝딱 수리를 해 주셨고 모르는 걸 여쭤보면 백과사전처럼 바로 정답이 나왔다.

또래 분들보다 키는 작으셨지만 테니스, 태권도 등 만능 스포츠맨에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어느 자리에서든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시던 아빠. 아빠는 어린 시절 내가 본받고 싶은 어른이자 언제나 내 작은 세상을 지켜주 슈퍼맨이었다.


그랬던 아빠가 어느새부턴가 막내아들인 내게 도움을 청하시는 일이 잦아졌다. 핸드폰 조작법에서부터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방법, 집에 뭔가 수리를 해야 할 일이 생겼나 병원을 가셔야 하는 경우 등. 어렸을 적 내가 아빠에게 모든 걸 의지했던 것처럼 이젠 아빠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신다.


물론 당연한 일이란 걸 안다. 세월이 흘렀고 아빠도 연세가 칠십 중반을 넘으셨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종종 낯설 때가 있다.

나보다 한 뼘은 더 작아진 아빠의 키가, 단단했던 팔과 다리가 어느새 많이 얇아진 모습이, 내 차 뒷자리에서 가끔 곤히 잠드신 모습이 날 울컥하게 만들 때가 있다. 더구나 작년에 인공심장박동기를 삽입하고 나서는 더 약해지신 느낌이다.


욕심인 걸 알지만 우연이라도 예전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 나타나길 기도한다. 슈퍼맨의 모습으로 우리 삼 형제를 든든하게 지켜주던 그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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