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스트레스

by J브라운


오늘은 연차휴가를 냈다.

지금은 6월 12일 오후 2시 28분. 동네 스타벅스에 와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6명의 남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끝에 자릴 잡고 노트북을 폈다.

남들은 어정쩡하다 말하는 목요일의 연차지만 난 아니다. 오늘 이렇게 쉬고 내일 하루만 더 일하면 또 주말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이나 가볍다.


어제 오후, 늘 그렇듯 아내에게 퇴근한다고 카톡을 보냈는데 맥주나 한 잔 하자는 답이 돌아왔다.


「갑자기?」란 내 물음에

「오늘 맥주가 좀 땡기네」라고 대답하는 아내.


안주로 뭘 먹을까를 고민하다 집 냉장고 냉동실에 잔뜩 쌓여있는 건어물에 며칠 전 사다 놓은 맥주를 마시는 걸로 얘기를 끝냈다. 아내에겐 집에 도착하는 시간을 알려주면 맞춰서 술상을 준비하겠다 말했다.


아내는 저녁 8시쯤 집에 도착했다.

시간을 미리 알려준 덕분에 먹태, 쥐포, 아귀포 등을 얼추 시간에 맞춰서 준비할 수 있었는데 아내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와 소파에 자릴잡고 앉았다.


"옷도 안 갈아입고?"

"응, 일단 마시자. 맥주가 겁나 땡기는 날이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무실에서 뭔 일 있었어?"

"짜증 나. 팀장이랑 선임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죽겠어."


스트레스의 원인


아내는 지금 직장생활 14년 차다.(난 19년 차다.)

아내는 회사 특성상 주기적으로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데 지금 사무실에선 작년 1월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팀장님과 선임이 올 1월에 마찬가지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면서 새로운 팀장과 선임이 왔고 이제 반년이 지나고 있는데 아내는 이 두 사람과 성향이 잘 맞지 않는다 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팀장과 선임은 이렇다.


먼저 팀장은 팀의 장으로서 하는 일이 없다. 사무실에 앉아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고 자주 이어폰을 끼고 뭘 보고 있는가 하면 건수를 잡아서 놀려고만 하고 6개월이 되어 가도록 주위에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란 말을 하고 다닌다.


선임은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본다. 책상에 앉아서도 핸드폰만 보고 심지어 걸을 때도 양쪽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폰만 본다. 그리고 자리를 오래 비운다. 한 번 나갔다 하면 15분은 기본이고 한 시간에 2번 이상은 나간다. 일을 하는 시간이 없다. 그렇게 업무시간에 일을 안 하고 습관적으로 야근을 한다.(야근수당이 있는 회사다.) 다른 사람의 얘기에 공감을 못하고 무슨 얘길 해도 자기 위주에 자기 잘난 얘기만 하며 업무에 있어서도 본인 성과와 관련이 없는 일은 당최 하지 않으려 한다.


아내는 어제 팀장의 무책임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모습과 선임의 태만한 모습에 유난히 화가 나서 속이 터질 것 같았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듯했다. 하긴, 이런 사람들이 동료라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깝깝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제 아내와 얘길 하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이

본인의 성향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민한 아내


아내는 예민한 편이다. 특히나 주위의 소리와 냄새에 민감하다. 의식적으론 아닌데 여기저기 주위 사람들이 하는 얘길 다 듣고 냄새에도 무척이나 민감해 며칠 전엔 거실에 있는 원목 책꽂이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못 견디겠다 했는데 난 정말로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건지 그 냄새를 1도 맡을 수가 없었다.


어제 아내는 팀원들의 못 마땅한 점에 대해 얘길 했다.


먼저 팀장에 대한 불만 중 첫 번째다.

아침에 출근해서 팀장에게 "팀장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면 팀장은 "네." 하고 짧게 대답을 한다고 했다.

"여기서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라는 내 물음에 아내가 답했다.

"'네'가 뭐야 ''가. '안녕하세요'라고 대답은 해줘야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원래 인사를 그렇게 하시는 거 아니고? 처음엔 안 그러셨어? 아니 혹시 여보한테만 '네'라고 하는 거야?"

"아니,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그렇게 하셔."

"그럼 팀장 스타일인가 보네. 그거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아내는 그렇다 했다.


두 번째로 팀장과 아내 그리고 선임 이렇게 셋이 점심으로 도시락을 싸 오는 데 점심을 먹고 팀장이 말도 없이 사무실을 나가는 게 불만이라고 했다.

"내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여기서 뭐가 불만인 거야?"

"아니 왜 말도 없이 나가냐고."

"근무시간 아니고 점심시간이잖아. 점심시간에 그것도 팀장이 자리 비우면서 아랫사람한테 얘길 하고 나갈 필요가 있을까?"

"전에는 점심 먹고 다 같이 나가서 산책도 하고 그랬거든. 근데 요즘은 팀장이 그냥 말없이 나가버려."


솔직히 난 아직도 아내가 이 부분에서 왜 기분이 상하는지 정확한 포인트를 모르겠다. 물론 아내 말대로 같이 산책을 했었으니까 팀장이 "오늘 산책은 쉴게요."라고 말이라도 해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해도 이게 그렇게 기분이 나쁠 일인가 싶었다.

"이제 팀장은 산책 안 하고 혼자 쉬려고 그러나 보네. 근데 이런 거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아내는 그렇다 했다.


그리고 바로 옆자리 후배에게도 불만이 있다 했다.

"아니 얘는 출근하면서 인사를 안 해."

"후배가 성격이 좀 소심한 편이야? 그럼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런 것 같진 않아. 그래도 사무실에 오면 적어도 팀장한텐 인사를 해야지. 와서 그냥 자기 자리에 바로 앉아."

"바로 옆자리라며 너한테도 인사 안 해?"

"그냥 내가 먼저 해."

"하면 받기는 하고?"

"어. 내가 먼저 '왔어' 하면 '안녕하세요'라고 대답은 해."


이 후배는 1998년 생이라 했다.

예전 나이로 28살이고 이 나이면 결코 사회에서도 적은 나이는 아니다. 내가 나이가 있어서인진 몰라도 평소 사회생활의 기본은 인사라고, 조직에서 인사만 잘해도 그 사람의 평가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들 중엔 인사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아예 이런 기본조차도 생각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 후배도 그런 거 아니겠냐고 얘기했더니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건 둘째치고 이런 거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스트레스야."


관심을 끄자


아내는 보수적이다.

윗사람에 대한 아랫사람의 수고로움을 조금은 당연시 여기기도 하고 예의, 예절, 기본원칙 같은 걸 많이 따진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고 예민하다. 그래서 주위에서 들리는 얘기와 벌어지는 사건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러다 보니 주위의 모든 얘기가 귀에 들어와 할 필요가 없는 생각, 받을 필요가 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주위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세밀하게 관찰하다 거슬리는 부분을 눈여겨보면서 또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 상당히 넓은 사람이다.


난 아내와 정 반대의 성향이다.

물론 예의, 예절, 기본원칙을 중요시하지만 강요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는 유연하게 넘어가곤 한다.

그리고 주위에 크게 관심이 없다. 사무실에서도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바로 앞이나 옆에서 하는 얘기들도 귀에 잘 안 들어오는 편이다.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 사람은 이런가 보구나. 저 사람은 저런 성향인가 보네.' 하고 넘어간다. 그냥 유하게 넘어가는 걸 선호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별로 없다.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내일부턴 출근하면 사람들에게 관심을 조금만 덜 갖도록 해보자. 아니 어떻게 그렇게 하나하나 신경 쓰고 스트레스받으면서 일해. 이건 아닌 거 같아. 스트레스가 얼마나 무서운 건데. 만병의 근원이라니까?"

"알지, 근데 그게 생각대로 안돼. 나도 내가 왜 이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싶은데 안 되는 걸 어떡해."


사람의 성향이란 게 그렇다.

쉽게 바뀌지 않고 알면서도 바꾸지 못한다.


"그래도 노력은 해 봐야지. 일단 시작해 보자. 그럼 조금이라도 바뀌겠지? 노력도 안 해보고 안될 거라고 단정 짓지 말자. 일단 내일은 평소보다 한 10% 정도 관심을 덜 갖는다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며칠을 해보는 거지. 어때? 할 수 있겠어?"

"10%가 어느 정돈데? 그게 가능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10%면 백중에 어느 정도의 관심량 일까. 그래도 사랑하는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직장생활을 하는 건 원치 않기에 또 얘기했다.


"암턴 내일부턴 관심을 좀 줄이는 거다? 단계적으로 조금씩? 알았지?"


잘하고 있나


이게 어제 일이고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내에게 카톡을 보내 관심을 좀 줄였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답했다.


"몰라, 벌써 피곤해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내도 그렇겠지. 그래도 하루하루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조금은 줄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도, 내일모레도 계속 체크해 볼 생각이다.


"오늘도 관심을 좀 줄이는 거다?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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