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희 Jun 07. 2024

언제나 당신을 환영합니다.


    

이팝나무 꽃잎이 흐드러지고 카네이션 붉은 색이 감사의 마음을 깊게 하는 계절.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때입니다. 이럴 때는 엉덩이가 들썩거려 집에 있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면 생수 한 병 챙겨들고 집근처로 마실을 나갑니다.


 아카시나무 꽃향기가 코끝에 매달리네요. 배고플 때 훑어선 먹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자 이제 저와 함께 우리 동네 구경을 나서 보실까요. 서울 은평구 뉴타운 근처에 북한산 둘레 길의 한 지류인 마실 길이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늠름한 모습으로 오는 이들에게 그늘을 내어줍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 떨기 딱 좋은 곳이지요. 그도 아니라면 그 멋진 느티나무 아래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멍~’한 시간을 보낸다면 무겁던 마음이 솜털같이 가볍게 흩날리지요.


 엉덩이도 따라 가벼워져 은행나무로 이어진 길로 접어듭니다. 마치 사관생도들의 사열을 받으며 걷는 것 같아 어깨가 절로 으쓱해집니다. 간간히 놓인 나무 의자에는 책을 읽는 사람, 아이들과 도시락을 먹는 사람, 혹은 누워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모두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지금은 여린 잎이 반기지만 머잖아 단풍 물든 가을이면 멀리 남이섬까지 가지 않고도 우아한 은행잎의 잔치가 근사한 풍경을 선사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때 친구나 연인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은행잎의 사열을 뒤로 하고 만나는 길은 요즘 핫 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는 은평 한옥마을입니다. 예스럽고 흐르는 곡선이 부드러운 한옥들. 넓은 처마와 포개지듯 겹쳐있는 기와지붕의 선과 북한산바위가 어우러져 첩첩산중의 아름다움을 연출합니다. 한옥마을 안쪽으로는 한옥 내부구조를 그대로 살린 채로 전시공간을 마련한 금암 미술관과 셋이서 문학관이 있어 우리의 심미적 감각을 풍요롭게 하는 가교 역할도 해주고 있습니다. 오래된 옛 마을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바쁜 일상 쪼개어 전주까지 가지 않고도 가깝게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생각 됩니다.


 셋이서 문학관 맞은편으로 펼쳐지는 숲에는 수령이 126-260년 정도의 느티나무 네 그루가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우리를 반겨줍니다. 머릿속 상념이 가득하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이 오래된 느티나무아래에 서면 누구나 편안해지는 마음의 고요를 찾을 수 있습니다.

 

 느티나무 숲을 지나 습지위로 난 데크를 따라 걸으면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 속에 서게 됩니다. 이곳은 북방산 개구리를 비롯해 도롱뇽 그리고 요즘 보기 힘들다는 맹꽁이가 서식하고 있어 서울시가 ‘진관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풀밭위에 지어진 곤충호텔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오래된 숲과, 그 속에서 숨 쉬는 작은 생명들을 품은 습지와, 우리네 옛집 한옥이 한데 어울려 연주하는 숲의 오케스트라가 들립니다.

느티나무 숲의 교향곡을 들으며 진관사 쪽으로 발길은 돌립니다. ‘마음의정원’길을 따라 걷다보면 진관사 입구인 ‘해탈 문’이 우리를 반깁니다. ‘종교를 넘어’라는 사색의 장미터널을 통과하고, 극락 교를 건너 조금 올라가면 진관사를 만납니다. 

 

 진관사는 도심 속에 있지만 북한산에 둘러싸여 있어 잡다한 일상에서 벗어나 가볍게 숨 돌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특히나 독립 운동가였던 백초월 스님이 간직하고 있던 태극기가 발견되어 우리의 항일 역사를 한번쯤 되짚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과거는 꼭 기억한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겠지요.


  진관사 경내를 둘러보고 눈을 돌리면 마치 강원도의 어느 계곡에 와 있는 것은 아닌 가 착각할 정도로 시원한 물소리와 커다란 나무들이 나를 반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말이죠.

이제 슬슬 다리도 아프고 출출 하신가요. 그럼 진관사 내의 전통 찻집 ‘연지원’에 들릅니다. 코끝 알싸하게 퍼지는 전통차향에 취하고 따끈한 단팥죽이 할머니의 품을 생각나게 하는 소박한 초가지붕을 얹고 있는 찻집. 반겨 줄 사람이 쫓아 나와 손 잡아줄 듯 가슴가득 그리움을 품게 하는 그런 집입니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아 뺨을 간질입니다. 노자의 무위자연이 있다면 이곳일거라 생각됩니다. ,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 않으세요. 이 좋은 계절 저와 함께 강원도의 자연과 남이섬의 낭만이 숨어있고, 전주한옥마을 보다도 더 정취 있는 은평 한옥마을을 함께 걸어보시지요.

언제나 당신을 환영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딸기잼을 만들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