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여정 삼삼한 기쁨 1

첫날의 악재

by 한승희

첫날의 악재



아침 6시 반 이스탐불 공항에 도착.

아직 도시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새벽 여명을 뚫고 버스는 보스포루스 해변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두근대는 내 마음도 달린다.

낚시꾼들로 유명한 갈라타 다리 앞에는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다리 난간 옆으로 낚시꾼들이 늘어서 있었다. TV <<걸어서 세계 속으로>> 에서 본모습을 실제로 보니 그제야 내가 여행객임이 실감 났다.

갈라타 다리의 낚시꾼들


가이드가 운 좋으면 선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일출을 기대하며 유럽과 아시아 사이를 흐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크루즈에 탑승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서 배 밖의 부두 근처에는 불빛이 찬란했다. 날씨가 서울에서 따라왔는지 잔뜩 흐려서 해가 나오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불을 끄지 못한 부두가 야경 같은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어 나름 찬란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크루즈

강 한쪽은 유럽 땅 그 반대편은 아시아 대륙 모두를 아우르는 나라 튀르키예. 고대부터 현재까지 함께 어우러져 문명의 창구가 되어 살아낸 날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배어 있겠지. 짧은 여행에서 얼마나 보고 얼마나 알고 얼마나 느낄지 모르지만,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유럽 땅은 유럽의 건축 양식이 화려하게 개방적이고 자유롭게 보였다면 아시아 쪽은 규격화된 네모와 폐쇄된 공간과 칙칙한 회색으로 우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한눈에도 전혀 달랐다. 이런 문화가 공존하며 어울린 세월을 생각하며 해협을 가로지르는 선상에 작은 아시아 여인이 서 있었다.


대조를 이루는 강변 동쪽과 서쪽,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나.

바람이 차갑게 불어 머리카락을 흩트린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면서 선명히 보이는 부두. 부두에 정착해 있는 수상 버스들이 신기했다.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메어있지만, 평일에는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고 한다. 수상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기분은 어떨까? 하는 생각과 함께 상쾌한 기분으로 업무에 임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타성 화 되면 아무런 감흥도 없어지겠지만. 우리나라에 처음 이층 버스가 나왔을 때 놀라고 그 버스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다 머리 부딪힌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수상 버스를 타면 무슨 변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한번 타보고 싶었다.


보스포루스 크루즈를 끝내고 바로 아야 소피아 성당으로 갔다. 옆에 블루 모스크도 일정에 포함되었는데 수리 중이고 4월에 재개관한다고 한다. 비수기에 문화재 수리하는 것은 어디나 같은가 보았다. 겉 모습만 한컷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블루 모스크


광장에는 터키인의 아침 식사인 시미트 빵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일행 중 한 분이 빵을 사서 나눠 먹었다. 터키인들의 아침 빵도 먹었으니 여행하는 동안 최대한 터키를 느껴보리라.

시미트빵을 파는 노점상



아야 소피아성당 앞에 앉아서 열 시 전에 도착 기다리는 줄에 서 있다

까마귀는 극성스럽게 울어대고 겨울 추위에도 공원 분수는 힘차게 물줄기를 올리며 힘을 자랑하고 있다. 공원 옆 골목 같은 차로에 다니는 트랩이 이국임을 실감 나게 한다. 공원을 거니는 젊은이들의 싱그러움이 추위를 잊게 한다.

아야 소피아 성당

휴대 전화기에 톡이 울린다. 서울에 있는 남편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격리해야 한다는 연락이다.

우째 이런 일이!

나는 왜 여기 이스탄불 공원에 앉아있는가.

남편은 코로나에 걸려 앓고 있는데 나는 중동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아야 소피아 성당에 들어가겠다고 언 손을 비비고 있다.

‘에구 복도 없는 사람 어쩌자고 나도 없는데 확진자가 됐누’ 하는 생각과

‘에구 얌통 머리도 없지 마누라가 해외여행 왔다고 그래 바로 병이 나는 건 또 뭐야’ 하는 생각과

‘참 나는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가?’ 하는 자책과 함께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도 같이 있어 전염되는 것보다 차라리 없는 게 격리 생활하기도 나은 거 같다고 하면서 신경 쓰지 말고 여행 잘하라고 한다. 되돌릴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일 그냥 즐기기로 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별일 없이 코로나를 이겨 내라고 기원이나 하자.

그래도 신경 쓰이는 것 어쩔 수 없지만, 산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 순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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