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항공 비행기에서 잘 자고 늦게 짐을 찾아 (짐이 엄청 느리게 나와 한참을 기다림) 버스를 타고 오늘 밤 숙소인 헬리오폴리스 힐튼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빨리 방에 들어가 축 처진 몸을 누이고 싶었다.
헬리오폴리스 힐튼 로비
잠시 후에 가이드가 지역 가이드가 명단을 잘못 제출해서 우리 명단이 아닌 다음팀 명단이 들어가 있어 확인과 수정 작업에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미 체력이 소진상태인데 기다려야 한다니. 할 수 없이 우리 일행은 로비에 난민처럼 늘어져 있었다. 조용한 로비에 그것도 새벽 한 시 반에 묘한 웃음소리가 매우 크게 고요를 흐려놓았다. 그 웃음소리는 계속 이어져 피곤해서 날카로워진 신경 줄을 몹시 화나게 하고 있었다. 옆에 바에서 아랍인으로 보이는 다섯 명이 술을 마시면서 떠들고 웃으며 내는 소리였다. 안내에 가서 조용히 해 줄 것을 부탁했다. 조금 조용한 것 같더니 더 큰 소리의 웃음이 정적을 가로질러 날아왔다. 그것도 계속되었다. 이래저래 참고 있던 일행 중 부산 아지매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곳으로 다가가서
“아지매 조용히 좀 하이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움찔하는 것 같더니 아랍어로 뭐라고 말을 했다.
미안하다고 하는 것 같았다. 서로 다른 언어지만 의사소통은 제대로 되고 있었다.
이 광경은 또 뭐지?
우리는 부산 아지매의 버럭 한마디에 이미 피로의 반은 풀려 있었다. 속이 시원해지는 순간이었다. 순발력 있는 우리의 걸 크러쉬 아지매 화이팅!
우여곡절 끝에 두 시가 넘어서야 방에 들어와 지친 몸을 눕혔다. 다음날 여섯 시 기상
아침에 짐 정리하면서 후르가다에 패딩을 두고 온 게 생각났다. 아침에 입으려고 보니 없다. 여기서는 그렇게 춥지 않으니 괜찮겠지만, 아뿔싸 우리 집에 뭐 입고가지. 참 대단한 모녀다. 여행용 가방을 부스 더니 옷을 잃어버리고도 모르고 다니고. 재미있고 이상한 경험을 새록새록하는 여행이다.
에고, 걱정의 외투를 벗었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피라미드 보러 간다.
카이로
다행히 날씨가 좋다.
파란 하늘 뿌연 먼지였지만 기자의 피라미드는 역시 완전 최고였다. 맨 앞의 쿠푸왕의 무덤과 중앙의 카프레, 그리고 세 번째 멘카우레의 피라미드. 재대로 잠을 못잔것도, 옷을 잃어버린것도 여행중 모든 악재를 잊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기자의 피라미드
이집트는 위대한 파라오의 땅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거대함, 위대함, 웅장함에 놀란다. 낙타들의 더러움과 지린내도 많은 관공객들의 혼잡함도 숨을 죽였다. 그 감동 앞에서 맥을 못 췄다.
그 무덤 앞에 수천 년을 지키고 있는 스핑크스의 당당함이 나를 압도한다. 어디서 오는 기운일까 궁금해졌다. 숨소리조차 내기 힘든 거대한 기운이 주변을 감싼다. 그저 입을 벌리고 아무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대단한 나라 이집트.
그 오랜 흥망성쇠를 다 지켜보고도 견고히 자리를 지키는 세 개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역시 오길 잘했다. 산 자의 땅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죽은 자의 땅에서 본다. 어쩌면 이렇게 인간은 영원한 생을 사는 것인가 보다. 내가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닌 대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황토의 땅과 황토의 먼지 사이로 보이는 세 개의 무덤 피라미드. 그 앞을 지키는 스핑크스의 당당함이 이집트를 지탱하는 힘인가 보다.
오후 일정은 멤피스로 이동 1820년에 출토된 람세스 2세 거상과 앨러배스터 스핑크스 관람 그리고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을 돌아보고 저녁 먹으러 갔다.
길거리마다 늘어져 자는 개들
람세스2세 와상
이집트에서 떡국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설날.
이집트 피라미드에 매료되어 잊고 있었다.
저녁 먹으러 간 한식당에서 부침개, 삼색 나물에 오징어 볶음과 제육, 잡채 그리고 떡국을 내어 완전 감동. 한 입 한 입 감사하며 먹었다. 제대로 한 살을 더 먹었다. 설날이면 매번 해야 했던 고역을 앉아서 받아먹는 감동까지 이집트 여행의 백미를 장식했다.
사장님의 한 말씀 이집트에는 가래떡을 뽑을 방앗간 비슷한 곳도 없어 한국에서 공수한 떡으로 끓인 떡국이라 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감동.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국을 먹는다.
혼돈의 카이로
너무나 위대한 조상을 두었기 때문인가 이집트 국민의 삶은 힘겨워 보였다. 다분히 개인적인 관점지만. 특히나 차선을 지키지 않고 운행하는 도로를 보고 경악했다. 교통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 가이드 말로는 4차선 도로가 6차선으로 운행되는 고무줄 도로라고 하면서 혼돈의 카오스가 아닌 혼돈의 카이로라 한다. 물론 우리도 그곳을 다녔다.
혼돈의 카이로
호텔 도착 후 저녁 먹고 근처 시장에 가려 했으나 감기 기운도 있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스카프와 원피스가 사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