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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맨 Oct 13. 2019

꿈의 책방 방문기

음.. 사실은 꿈꾸는 책방

오토바이 가게와 차량 부품 가게, 공업소가 연이어 늘어선 큰 길가.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마저도 자동차 소리와 각종 기계음에 묻혀 그 흔적을 찾기 쉽지 않다. 삭막한 이 길을 걷다 고개를 돌려 왼편을 보면 저 멀리 대학교 후문이 보이고, 그곳까지 곧게 뻗은 길을 찾을 수 있다. 왕복 2차선에 불과하지만 양쪽에 보도블록이 넓게 깔려있고 가로수도 있어 좁지 않다. 이 곳에서 자동차 소리는 사람들의 소리에 묻힌다. 여기서 이번에는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과 아이스크림 가게의 사잇길로 한 번 더 꺾어 들어섰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만들어내던 소란스러움이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적막함보다는 따뜻함에 가까운 고요가 펼쳐졌다. 미용실 앞 커다란 빨래건조대에는 핑크색이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수건들이 빼곡히 들어차 한 방향으로 허우적대고 있고, 편의점 앞에는 진한 파란색의 간이 테이블과 의자 몇 쌍이, 세탁소 앞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빈 양동이 두 개가, 옷가게 앞에는 가게의 SNS 계정을 소개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골목길 치고는 좁지 않은 편이지만 자동차 두 대가 마주하면 누군가의 양보와 잠깐의 멈춤이 있어야만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정도의 너비.


적당한 속도로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중간중간 갈색 벽돌을 두른 하얀 벽에 나무 창틀을 포인트로 가진 3층 건물을 만날 수 있다. 1층에는 넓지 않은 주차 공간과 작은 책방이 있고, 그 사이에 2,3층의 가정집으로 올라갈 수 있는 출입구가 있다. 책방의 전면에는 각기 다른 나무로 만든 아치형 문이 두 개 있는데, 그중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듯한 오래된 고재로 만든 문이 실제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이고 호두나무로 만든 어둡지만 단정한 느낌의 다른 문 하나는 단지 장식일 뿐이다. (왜 굳이 열리지도 않는 문 하나를 더 만든 거냐 물으니, 그는 둘 다 너무 예쁜데 하나만 다는 것이 아쉬워서 그랬다고 답했다.)




책방으로 들어서면 제법 높은 층고가 개방감을 준다. 한쪽 공간은 온전히 책이 차지하고 있고, 다른 쪽은 손님들이 음료를 마시거나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휴식 공간에는 단차를 둬서 개방된 반층 낮은 공간과 유리벽으로 막힌 복층 공간으로 구성했다. 서점에서 행사나 워크숍을 진행할 경우 먼 곳에서 찾아온 일반 손님들이 헛걸음을 하거나 소외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러한 구조로 만들었다고 한다. 테이블과 의자들은 높낮이나 색상은 모두 다르지만 대부분 나무 재질로 따뜻한 느낌을 주고, 곳곳에 크고 작은 화분을 두었다. 음악소리는 책을 읽는데 방해되지 않는 적당한 음량으로, 가사가 없는 노래 위주로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책들은 책등만 보이게 꽂아놓지 않고 모두 표지가 잘 보이도록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취급하는 책의 종류가 확연히 줄어들긴 하지만 그래도 큐레이팅 한 책들이 손님들에게 더욱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방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책 바로 아래쪽에는 긴 줄에 작은 메모와 종이 책갈피를 달아 놓았다. 메모에는 책방 주인이 그 책에서 꼽은 한두 문장이 반듯한 글씨로 적혀있고, 함께 달려있는 책갈피는 책의 내용을 따서 그린 그림으로 만든 것으로 책을 사면 함께 증정한다고 쓰여있다. 이따금 직접 책의 작가와 상의하여 배지나 메모지, 마스킹 테이프 등을 만들어 별도 판매하기도 한다. 매번 새 책을 들일 때마다 새로 굿즈들을 만드는 것이 고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특별한 경험을 함께 주고 싶다는 이유에서 힘이 닿는 한 계속 만들어보겠다고 한다. (사실은 주인이 직접 만드는 것은 30% 이내, 그의 아내가 만드는 것이 70% 이상이다.) 책장의 제일 하단, 샘플용 책들과 구분되는 공간에는 판매용 책들을 꽂아두었다.


입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가장 안쪽에 위치한 카운터에서는 도서 계산과 함께 음료 주문이 가능하다. 책과 음료를 함께 구매할 경우에는 도서구입 소득공제가 가능하도록 각각 나눠서 결제해준다. 음료로는 간단한 커피와 차 종류가 가능하다. 차는 작은 주전자에 담아 직접 따라 마실 수 있도록 하며, 커피는 핸드드립으로만 제공한다. 아날로그 느낌을 주고 싶다는 의미가 크지만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나는 소음이 책 읽는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드르륵드르륵 커피 원두를 가는 소리가 더 크다.) 디저트 가게나 빵집으로부터 스콘이나 타르트를 받아 함께 판매하기도 하는데, 꼭 같은 동네에서 파는 제품들만 소개하고 상호명과 위치를 함께 제공하는 것도 이곳만의 특이한 점이다.


이곳은 휴무일인 매주 화요일을 제외하면 오전 10시 반에 문을 열고 밤 10시 반에 문을 닫는다. 대부분의 독립서점들이 월요일을 휴무일로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월요일에 독립서점을 찾고 싶어 하는 손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주인이 쉬는 날에 다른 서점을 가고 싶어서란다. 매주 수요일 밤에는 '수요일의 글쓰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조용히 글을 쓸 시간과 장소를 제공해줄 뿐 서로 평가는 하지 않는 것이 제1원칙으로, 글을 쓸 소재를 찾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제를 정해 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필사할 수 있도록 관련 도구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글 쓰기에 재미를 붙이고 꾸준히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당연히 그에 발맞춰 좋은 작품들이 늘어나고 책을 읽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라는 것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본인 수준에 맞게 배우고 싶거나 취미생활로 하고자 하는 활동이 있는 경우에는 전문 강사를 초빙하여 별도로 진행되는 워크숍에 참석하면 된다. 다만, 수강신청을 하고 도구들까지 잔뜩 사놓고 나서도 정작 생각보다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정식 워크숍 전에 글쓰기, 드로잉, 굿즈 제작, 캘리그래피 등 주요 워크숍들을 한 번씩 체험할 수 있는 샘플러 워크숍도 신청할 수 있다고 하니 정식으로 신청하기 전에 본인에게 맞는 취미생활을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위 본문에 등장하는 책방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존재하는데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여러 작은 책방들을 다니면서 좋았던 점들이나 아쉬웠던 점에 대한 아이디어를 담아, 단지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상적인 책방과 나중에 만들고 싶은 책방의 모습을 써 본 것일 뿐이다. 틈 날 때마다 책방의 인테리어나 분위기, 메뉴와 운영방식 등을 상상하고는 하는데, 실제로 현실로 옮기려면 적어도 수년은 더 걸릴 테니 실제로 만들어질 책방의 모습은 저 내용과는 참 많이 달라지겠다 싶다. 물론 새로운 아이디어가 팡팡- 떠오르더라도, 자금 압박으로 인해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잔뜩 있겠지만 말이다.


2019년 10월 13일. 인사동의 한 카페.

순간의 망상이지만, 그래도 헛되이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아 일단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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