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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Jun 23. 2022

82년생 김지영 두 번 보기

싱가포르 Teaching Artist 워크숍을 준비하며


2017년 '82년생 김지영'을 책으로 처음 보았다. 그때만해도 페미니즘이 대두되기 전이여서 '정말 용기 있는 책이다.'라고 정도만 생각했지 사실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2년 후인 2019년 영화로 개봉되었다. 그 영화를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와 함께 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엄마는 영화가 끝난 뒤 명언 아닌 명언을 했는데 "남편이 다정한 역할이 나오는 공유라 좋겠다."라고 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로 만들어지고 여러 논란들이 많았지마나 정말 중요한건 적어도 나나 내 주변에서는 가부장제를 잘 미화시켜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걸 또 설명하려면 내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적어도 이 글을 보고 공감할 누군가를 위해서 글을 쓴다.


나는 82년생도 아닌 92년생이지만 어려서부터 여성이 ~이래야 한다. 라는 것에 많은 것들을 듣고 바라보았다. 우리 아빠의 집은 진도이며 뿌리 깊은 제사를 지내고 그 후엔 늘 부부싸움이 잦은 편이었다. 제사 자체를 문제 삼는게 절대 아니다. 제사에 대한 두려움과 오해가 내가 자라면서 지금까지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다. 제사를 그냥 외국의 크리스마스 정도로 생각한다면 정말 별게 아닌게 된다. 가족끼리 모여서 하는 축하 행사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엄마의 역할은 명절 내내 서서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제사거리를 장만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빠는 지금이 되서야 많이 도와주긴하지만 그래도 힘들땐 티비를 보고 누워있는 모습이 조금 태반이었다. 이게 우리 엄마 아빠만 그랬으면 상관없는데, 온 가족들의 분위기가 그랬다. 특히 일년에 한 번씩 우리 집은 큰 집이라서 할아버지 제사를 따로 지내는데, 그때마다 거의 30명이 넘는 친척들이와서 그날은 정말 전쟁같았다. 그리고 아직도 남녀칠세 부동석이라고 남자는 큰테이블에 더 좋은 반찬을 두고 먹고, 여자는 작은 테이블에 적당한 반찬을 두고 먹는다. 그 과정을 다 겪은 몸이 약한 엄마는 그 후에 아파는 매번 드러누워서 몸을 겨눠야만 했다. 그렇게 맏며느리를 당연시하면서 무시하는 무례하는 말들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제사를 지낸다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은 조금 나에게 당연했었다.


82년생 김지영 영화의 한 장면 1(출처:구글)

명절에는 친가가 있는 진도에 갔다가 그 후에  우리가족은 외갓댁이 있는 전주로 올라갔다. 외가댁에서는 주로 함께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걸 먹으면서 명절을 보냈다. 오랜시간 존재하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제사 문화가 무조건 잘 못됬다고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제사 문화가 여성들에게 (특히 며느리들) 주는 의무와 책임이 얼마나 컸는지 다시 되돌아보고자 하는 바람이다. 서로 행복하자고 모인 가족 모임에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왔으니 여러모로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요새는 다행이도 제사음식을 사는 곳들도 많아지고, 이 명절 문화를 바꾸는 추세이다. 영화에서 명절 장면을 보면서 그냥 누구하나도 고통 받는 것 없이 가족들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명절이길 간절히 바랬다.


82년생 김지영의 과거와 현재(출처:구글)


또, 영화에서 지영의 산후 우울증은 독박육아로 조금 더 심해진다. 한국은 출산률이 0.8%로 굉장히 낮은 나라며 정작 이 정책을 바꿔야 하는 윗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고 일하며 육아까지 홀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 내 주변에도 많은 이들이 육아를 하며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가정에 매진하는 친구들이 꽤 있는 편이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고 나중에 고백할것이 보인다. 혹은 부모님들께 아이를 맡기며 겨우 인생을 살아가며 치열하게 고부갈등을 느끼는 친구들 또한 힘들었다고 훗날 아이를 키우는게 참 힘들었다고 말할 것이 느껴진다. 물론 이 삶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대학시절 함께 꿈을 꾸고, 어떤 직업을 가질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친구들이 그렇게 변해가는게 조금 가슴이 아프다. 자신에게 선택된 수많은 기회 중에서 자신이 아닌 아이를 선택한 그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사실 나도 할머니 손에서 자라기도 했고, 엄마도 60세가 넘는 나이까지 일을 하고 있고 딱히 엄마가 된 여성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러서 나도 유럽에 가기전까지는 크게 이 부분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특히 나는 아무렴 남녀 성평등이 세계 4위인 스웨덴에 가서 그런지 그들의 삶을 보고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부부 모두의 육아휴직이 자유롭고 아빠의 경우 180일이 의무 육아 휴직일이다. 그리고 출근이나 퇴근 또한 직장내에서 육아에 관한 일이라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나의 예로 내가 스웨덴에서 공부할때 대학원 교수의 아이가 수업 중 유치원에서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아이를 픽업해서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분명이 수업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불만하지 않고 어서 가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이야기 했다. 그 부분이 좀 인상적이었다.


만약 한국의 직장이었으면 어땠을까?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시간에 쫓기는 일과 같은 현상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또한 누가 아이를 픽업할까도 부부의 갈등 중 하나인 걸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그 안에서 서로 사랑받았고 성장했지만 이러한 경험들 때문에 모두 아이낳는 것을 두려워 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너무 바쁘고 여유없는 시간 안에서 살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들여다보기 힘들다. 나 혼자사는 것도 이렇게 바쁜데, 가족이 생긴다면 어떤 모습일지 잠시 상상해보였다. 지난 TA 글​에서도 썻듯이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는건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그 시간들을 함께 확보해 가는 것이 또 가족의 역할이기도 하다. 가족들과 함께 온전히 누려야 하는 휴식시간 혹은 기념일에 모든 회사들이 축하해주고 함께 해주는 근로조건이 되었으면, 아이가 유치원에서 무슨일 생기면 당장 달려갈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고 평일 오후 시간을 가족끼리 넓고 짙은 대화로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이야기하고나니 조금 한숨이 절로 난다. 복지국가 스웨덴이 아니라 아이 낳기 좋은 나라 한국이라는 주제로 언젠가는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김지영 영문 책 이미지(출처:Yes 24)


이렇게 한참을 글을 쓰고 나니 곧 싱가포르에서 진행할 ASIA Teaching Artist Workshop에서 한국 여성의 삶을 소개해야하는데 어떻게 입체적으로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 된다. 내가 한국여성으로서 누렸던 권리는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한국 사회의 아픈 부분을 꺼내어 보는 것은 나의 심장의 아픈 부분을 꺼내어 보여주는 것 과 같다. 그만큼 애국심이 있기에, 조금 더 나은 사회를 간절히 원하기에,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바꿀 언젠가를 기다리기에 이렇게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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