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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Sep 08. 2022

엄마가 암이래요

삶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낄 때


수술 전

화요일부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괜찮은척하며 에너지를 타인들과 나누며 "하하호호"거리며 힘을 냈다. 계속해서 무너지는 마음에 손이 떨려도 애써 웃고 눈물을 삼켰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감정을 마주하는 게 어렵지 않은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건 차마 내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삶의 난관이다. 언제나 그렇듯 해야 하는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그냥 무기력해서 계속 잠이 온다. 분명 저번 주만 해도 신나게 모든 것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웃던 나였는데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하지만 슬퍼야 하는 당연한 감정이 내게 온 게 분명하다. 이렇게 정리가 되지 않는 글을 쓰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다. 그리고 내가 삶을 이렇게 마음껏 사랑을 누리며 살아온 원동력에는 무엇보다 엄마의 역할이 가장 크다는 걸 크게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혼자 있을 때라도 펑펑 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눈물이 하늘에 닿아 우리 가족을 잘 위로해줄 수 있길 바란다.



수술 당일

수많은 사람들의 중보기도와 사랑을 받으며 가족이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출혈로 수술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엄마와 함께했던 지난 시간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때론 너무도 사랑했고 너무도 원망도 했던 그런 애증의 관계, 하지만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 우리 엄마. 엄마는 얼마 전에 실버모델이 되고 싶고, 나중에 모델 아카데미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수술이 잘 끝나고 회복을 해 꼭 제2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하나하나 바라보길 바란다.



수술 후

수술 다음날도 아주 평범하게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왜 이럴 때 하필 일이 많아서 이렇게 몸과 마음이 고된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다. 괜찮지 않은 상황이 내게 와도 씩씩하게 이겨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해 적당히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떠오른 부정적인 감정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일단 잘 삼키고 일상을 살기로 했다. 하지만 내 마음과 같지 않게 엄마는 사 일간 인사불성이었다. 겨우 말을 해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왈칵 났다. 하지만 내가 울면 엄마가 너무 힘들걸 아니 일단 눈물을 이곳저곳에 욱여넣었다. 또다시 마음을 잠시 숨겨두었다가 기도하는 시간에 잘 대처하며 하늘에 내 마음을 올려 보내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엄마를 위한 짧은 시도 써보고, 편지도 쓰고, 더욱이 엄마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다.


-


다음 생은 엄마


다음 생앤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조금만 힘들고 울고 싶다


다음 생앤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조금만 생각하고 후회하고 싶다


다음 생앤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조금만 자식 위해 살고 자신 위해 살고 싶다


다음 생앤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조금만 버티고 인내하고 싶다


다음 생앤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그렇게 다음 생앤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


그렇게 시간은 지나 수술한 지 2주가 되었고, 아직 경과를 봐야겠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엄마의 모습에 안도감이 든다. 요즘 나 말고도 주변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아프기 시작했고 혹은 말 못 할 병이 걸리기도 하셨다. 이런 상황들을 겪으며 또 새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지금 이렇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하는 일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지혜를 선물해준다. 앞으로도 조금 더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소중한 이들을 위해 언제든지 품을 내어줄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오늘도, 내일도 후회  인생을 위해 더욱이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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