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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Nov 05. 2022

글보다 앞에 서 있는 사람

글을 계속해서 써야 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는 깊다


이번 봄과 여름을 원치 않게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흐린 안개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꽉 막혀있던 시야를 겨우 지나 어느새 눈앞에 선명하게 가야 할 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도 하나씩 쑥 내려가고 더욱이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지난 시간 목매고 지내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정말 별개 아니라 느껴진다. 무엇보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휘리릭 하고 바뀌었으니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살고, 마음에서 들리는 지금의 소리에 잘 집중해 그것을 꺼내어 보는 훈련도 꾸준히 하게 된다. 앞전의 예상치 못한 일이 아니었으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계획들은 나를 더욱이 성숙하게 만들어준다.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가 깊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마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시기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 스스로 하고 싶고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해내고 있으며 그것을 성취로 까지 이끌어 가는 중에 있다.



숭고미와 비장미를 지켜라


계속해서 오랜 시간 마음 안에 지키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금 꺼내어 보고 있다. 무엇보다 '왜 이렇게 사는 게 힘이 들지?'라는 질문을 오랜 시간 동안 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이제야 조금이나마 마음속이 왜 이렇게 더부룩하고 불편했는지 알 것 같다. 여태껏 이상적인 머릿속의 생각들을 현실로 부지런히 만드느라 지쳐왔던 것 같다. 뭐 하나를 시작하게 되면 포기하지 못하고 모든 일을 진정성 있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쌓여있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많은 힘이 필요했고, 그 마음을 끌어가는 원천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마음 안에서 어떤 울림이, 무엇을 부르고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했다. 그건 다름이 아닌 숭고미와 비장미를 지키기 위해서 오랜 시간 쌓아 올린 마음이었다.


숭고미 : 장엄하고 거룩한 초월적 아름다움
숭고는 현실 세계를 초월한 것을 뜻하는 말. 인간이 아무리 추구해도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바로 숭고미. 숭고미는 대체로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비장미 : 비극의 아름다움
비장미는 현실 세계를 비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주어진 여건을 극복할 수 없을 때 미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비장미다. 비극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하면 모순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극이 아름다운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래서 올해는 코로나19도 끝날 무렵이기에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쓸모없는 도전들을 시도해보았다. 본격적으로 예술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처음으로 세상에 나가보고, 몇 시간씩 앉아서 멍도 때려보고, 일주일에 세 번씩 교회에 나가서 울면서 기도해보고, 3개국의 비행기 티켓을 한꺼번에 결재도 해보고, 결국 또 인도 찬드라반 마을에 갈 것을 결심하고. 누군가가 보기에는 모든 것이 현실과 동떨어져있어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비장하게 누군가의 꿈을 함께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 스스로의 직면할 수 있었다.  그 무진장 힘들다는 이상을 현실로 바꾸려는 노력을 매번 하려고 하니 이렇게 지쳐 쓰러진 게 아닌가 싶다. 그 가운데 이제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을 용기가 생겼다. 스스로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삶 또한 위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대추 한 알처럼  사는 인생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21살이 됬을무렵 함께 교회를 다니던 C언니가 '정말 너를 닮은 시야!'라고 하며 공유해주었다. 10년이 지난 이제야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사실 20대는 쉽지 않은 삶이었고, 그것을 자처하는 스스로가 있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고통을 만들려고 한다.  직접 발로 뛰어 붉어지게 만들지만 스스로를 지키며 더 단단한 대추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비행기표를 구매하려고 한다.’라는 글보다는 행동으로 지금 인천 공항에 베트남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다시 즐거움으로 단단해지는 과정들을 맞이해야지. 언제나 글보다 앞서있자고 다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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