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서 만난 놀이터
2018년 2~5월,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교에서 Child Culture Design 석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폴란드 바르샤바 예술대학 학생들과 폴란드, Kielce라는 도시에 과거에 감옥이었던 곳을 박물관을 개조한 곳에 새롭게 놀이터를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다섯 달 동안 진행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 달 동안은 수업의 일부로서 아이들의 놀이 특성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하루종일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관찰했다. 짧으면 30분 길면 4시간 정도를 가만히 ‘놀이터’에 앉아서 아이들과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님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동네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 되어줬고 특히 아이들의 아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코끝이 시린 1월, 날은 추웠지만 놀이터가 동네 사람들의 소통창구가 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나머지 네 달은 놀이터를 짓기 위한 디자인씽킹, 워크숍, 프로토타입을 진행했고, 학기가 끝난 후에 선정된 놀이터를 제작하고 설립하였다.
한 달 동안 스웨덴에서 문헌조사 리서치를 진행하고 나서 다음 달 총 14명의 과 동기들과 함께 폴란드 바르샤바 예술 대학으로 떠났다. 일주일 동안 폴란드에 머물면서 앞으로의 놀이터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과 팀을 짜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정말 놀랍게도 비행기표, 숙소, 음식 등등.. 모든 경비를 학교에서 지원받아서 폴란드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바르샤바 예술대학을 탐방하고 함께 프로젝트할 폴란드 친구들과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다졌고, 다 함께 바르샤바에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KIELCE라는 도시로 떠났다. 함께 어떤 프로젝트를 할 것인지 이야기했고, 바르샤바에서와 달리 KIELCE에서 숙소는 구하기가 어려워 한 성당에서 잠을 잤다.(폴란드인의 95%는 로마 가톨릭 신자이다.) 고즈넉한 성당에서 촛대를 여러 개 켜놓고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시간들이 아직도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KIELCE에 있는 과거에 감옥이었던 건물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놀이터로 새롭게 구상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이 주였다. 내부는 과거의 감옥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많은 아티스트들이 상주하며 작업을 하는 레지던시로 탈바꿈했고 그러면서 이름도 'ID KIELCE'라고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에 많은 작업들이 있었기에 이미 변화에 성공적이라고 느꼈지만 외부는 여전히 감옥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KIELCE 도시는 폴란드 수도인 바르샤바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거의 대부분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Child Culture Design 전공생들과 함께하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조금이라도 KIELCE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들이 ID KIELCE를 자주 방문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협업을 제안했다고 했다.
먼저 KIELCE의 아이들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이곳에 놀이터를 짓는다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한 후 KIELCE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나는 “우리 워크숍을 열 때 아이들에게 게임 형식으로 운동회를 진행하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폴란드의 한 친구가
나는 아이들이 경쟁 없이
그저 워크숍의 상황을 함께 즐기면 좋겠어.
게임 형식이 되면 등수를 나눠야 해서
결국 서로 비교를 하게 될테니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
라고 말해주었다. 경쟁사회에 익숙했던 터라 내가 한 말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아무런 비교도 없이 즐기는 삶에 대해 더욱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워크숍을 물품을 준비할 때는 ID KIELCE 건물 창고에 있는 물품들을 주로 활용했고 건물을 돌아다니며 직접 원하는 놀이터를 몸으로 표현하고, 그림도 그려고, 버려진 천들이나 역할극을 진행해 보며 등등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폴란드는 6-18세까지 무상교육을 진행하는 나라라서 그런지 KIELCE에서 만난 아이들은 워크숍의 환경이 익숙해 보였다. 그래서 스스로, 함께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로 차분하며 말을 잘 듣는 편이었으나 마지막에 워크숍이 끝날 때는 물건 중 빈 박스를 던지기도 하며 기존의 억압된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구석구석 보물 같은 공간들 발견하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한 희망을 더 가졌던 것 같다.
그렇게 ID KIELCE를 즐겁게 탐방하고 나서 어떻게 놀이터를 만들 것인지 구체적인 디자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코로나 19 이전부터 Google Meet를 사용하며 바르샤바에 있는 동료들과 소통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적잖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먼저 폴란드의 역사부터 함께 공부했고, 장작 4개월 간 바르샤바 예술대학 학생들과 폴란드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해 이 시기에 300만 명 가까이 유대인들을 포함하여 600만 명에 달하는 폴란드인들이 사망한 가슴 아픈 과거가 있었다고 한다. 200년간 전쟁이 없었던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문화였다. (물론 한국 사람인 나에게는 충분히 공감할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아픔을 ID KIELCE의 원형이었던 감옥이었던 이미지에 대입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감옥의 철장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철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감옥의 일부인 철을 이용해서 “Break the Bar”이라는 주제로 감옥의 철장을 넘어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콘셉트를 가지고 놀이 기구들을 재해석했다. 나는 주로 비주얼 디자인을 담당했고, 같이 했던 팀의 친구들은 대부분이 재품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내가 스케치한 다양한 프로토타입을 3D로 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다섯 달이 지나 마지막 발표를 하러 다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다섯 팀 중 단 한 명의 팀만 뽑힐 수 있기 때문에 모두들 긴장 상태였다. 어떻게 하면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어려웠던 만큼 결과도 좋았으면 하는 마음이 올라왔는데, 마침 우리 팀의 아이디어가 선정되었다.
지금 돌아보니, 정말 좋은 기회와 타이밍으로 스웨덴에서 Child Culture Design을 공부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한 학기 전 혹은 후에 교환학생을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놀이터를 지을 수 있는 계기가 있었을까? 폴란드 예술대학 친구들과 협업을 할 수 있었을까?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내가 '놀이터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진행할 수 있는 좋은 원동력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힘쓰는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전하고 싶은 하루!
놀이는 우리 뇌가 가장 좋아하는 배움 방식이다. - 다이엔 에커먼
참고문헌(사이트):
https://idkielce.pl/project/wokol-activated-c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