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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Dec 22. 2020

차가워도 따뜻하게

2020년 2월 10일 일기


기지개를 켜고 시작하는 이른 아침, 책장을 뒤져 본다. 내 손에 들어온 책 한 권. 롤랑 바르트가 책을 읽는 행위는 마음에 새싹을 심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딱이다. 뇌의 토양에 예쁘게 물을 주고 햇볕을 쬐는 기분. 참 좋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작가의 말을 읽는다.


누구에게든 인생의 어느 시기를 통과하는 도중에 찾아오는 존재의 충만과 부재, 달랠 길 없는 불안과 고독의 순간들을 어루만지는, 잡고 싶은 손 같은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0대에 나에게 찾아왔던 끈덕진 고통의 밤들이 생각났다. 지독한 무기력감의 시간들, 나를 짓누르던 아픔들, 눈도 뜰 수 없이 애처로운 모습. 여전히 많은 마음들 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더 짙은 기도를 주저리 게 되나 보다. 길었던 아픔이 씻겨져 내려 지금의 내가 있다. 조금은 탁해졌을지라도 아직까진 맑고 깨끗한 삶을 지켜내고 싶다. 


언제나 작은 부스러기들에 애착하는 마음을 알았는지 책 귀퉁이에 쓰여있던 시의 낱말이 나를 쓰다듬어 준다.


나의 삶이 어디까지 이를까

그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폭풍 속을 거닐고 있는가

물결이 되어 연못 속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나는 이른 봄추위에 얼어붙은 창백한 자작나무일 뿐인가?


-릴케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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