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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Dec 21. 2020

진짜 삶을 말하다

2016년 10월 20일 일기


우리 세기의 중심 문제는 인간의 상호관계이다.
하이데거에게는 인간의 '세계 안의 존재' 도 있지만

 '함께하는 존재'도 있다. '공동체'라는 말에도 같은 생각이 담겨 있다. '사교성'은 인간의 본질적 특징이다.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나와 너의 실존과 관련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포이어바흐와 마차도가 가르친 대로 나의 실존에 이미 함께 주어진 너의 실존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사회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타자의 존재 역시 우리 각 개인의 일부이기에 사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성상 타인을 위한 존재이다. 우리 시대는 상호 주관성의 문제에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에드문트 후설은 타인의 실존을 '제2의 자아', 즉 유추 법칙을 통해 접근하여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나'라고 주장한다. 막스 셸러는 합리적이지만은 않은 정의를 찾으려 노력하며 소통의 기원을 공감과 사랑에서 찾는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타인을 자신의 '환경'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 자신이자 나의 환경이다. 내가 내 환경을 구원하지 않으면 나 자신 역시 구원하지 못한다."

중략

타인의 소위 '불투명성' 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성을 파악할 뿐 아니라 그의 성격까지 이해할 수 있는 실질적 가능성은 존재한다. 아이의 첫 움직임은 비록 자기중심적일 망정 분명 타인을 향한 움직임이다. 생의 첫 순간부터 일종의 공존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공존을 우리는 더 높은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 실제의 '공동체'를 이루려면 이 모든 장애와 불투명성을 극복하고 자신의 자아를 넘어 타인의 자아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는 나와 너와 우리를 껴안는 책임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인식할 수 있을 때에만 타인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적인 헌신이 곧 자신의 사적 공간을 포기한다거나 타인의 사적 공간을 침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인식이지만, 또 인식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신에게 투명하다면 타인의 불투명성은 인간의 가능성 안에서 투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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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활동이란 라틴어 어원 sponte의 뜻 그대로 자아의 자유로운 활동을 말한다. 라틴어 sponte는 '자유의지로'라는 뜻이다.
 활동은 '어떤 것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활동이란 감정의 영역은 물론이고 지적, 감각적, 의지의 영역에서도 이루어지는 인간의 창의적 활동을 말한다. 자발성의 전제조건은 인격을 전체로 받아들이고 '이성'과 '본성'을 나누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자아의 본질적 부분들을 억압하지 않을 때, 자기 자신에게 명료해질 때, 삶의 다양한 영역을 근본적으로 통합시켰을 때에만 자발적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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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들은 적어도 순간이나마 자신의 자발성을 경험하고 동시에 그 순간을 진정한 행복으로 느낀다. 어떤 풍경이 아름답다고 자발적으로 느낄 때, 고민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틀에 박히지 않은 종류의 감각적 쾌락을 느꼈을 때, 타인에 대한 사랑이 갑자기 솟구쳐 오를 때, 그런 순간 우리 모두는 자발적 체험이 무엇인지 알게 되며, 그런 체험이 이렇게 드물지 않게, 세련되게 찾아온다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어렴풋하나마 예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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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발성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사랑이다. 하지만 자아가 다른 사람 속으로 녹아버리는 그런 사랑이나 다른 사람을 소유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랑은 아니다. 그 사랑은 개인의 자아를 보존하며, 다른 사람을 자발적으로 긍정하고,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그런 사랑이다. 사랑의 역동적 성격은 분리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개성을 잃고 싶지 않은 욕망에서 탄생하는 양극성에도 있다.

모든 자발적 활동에서 개인은 세계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아는 온전해지고 더 강해지며 더 탄탄해진다. 자아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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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하건 안 하건 자기 자신이 아닌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없으며, 진짜 자기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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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페이지마다 밑줄을 치게 하는 에리히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읽으며 너무나 많이 생각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날마다 새로 태어나기 위해 투쟁하는 우리, 우리의 안전을 포기할 용기와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그리고 그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그 용기에 함께 박수를 치며 서로를 안아주고 싶었다. 진짜 삶이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 우리는 더 알게 될 것이며 서로의 사랑으로 한층 더 깊은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믿고 또 믿는 오늘.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오늘만을 위해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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