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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Dec 25. 2020

2020년도의 크리스마스

지극히 평범한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이 맘때쯤에는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거나, 데이트 준비를 하거나(남자 친구 or 썸남과), 정신없이 인도 가는 준비를 하거나 하는 등 셋 중 하나를 고르며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보내볼까 고민했던 것 같다.

요새 직장 내 스트레스가 극심하니 각박한 상황 속에서 휴일까지 반납하며 사람을 만나서 대화할 여유가 전혀 없었기에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딴 생각 따위 집어치우자. 눈 푹 감고 쉬어가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진득하게 퇴근 시간까지 일을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화랑대역부터 2시간 30분이 걸리는 본가로 내려갔다. 삼각지역에서 사호선 환승을 타기 위해 걷고 있는데 중간에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여러 꽃들을 파는 가게를 보았다. 오늘이 월급날이기 때문이었을까? 차마 지나칠 수 없어 엄마를 닮은 분홍 들국화 한단을 구매했다. 아무리 가도 집을 도착하는 길은 끝이 없는 경기도민의 삶이 힘겨워 아빠에게 전화를 해 역으로 대릴러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가족이란 그렇다. 멀리 있으니 더 그렇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립고 보고 싶은가. 당연하다는 듯이 아빠는 아주 간단명료 하게 '알았어'라는 대답으로 역으로 나와주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시장을 지나칠 수 없었다.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방어와 전어, 그리고 벌써 감칠맛이 나는 맥주와 소주 한 병씩을 구매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사람 사는 맛을 느낀 기분이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식탁에 회를 깔아 뒀고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나름의 소박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준비를 했다.   점에 초장을 푹 찍어먹으며, 동생이 열심히 탄 쏘맥을 다 같이 카- 하고 들이켰다. 그리고 보통의 식탁에서 늘 이야기했던 아주 평범한 대화들을 함께 나눴다.


먹고 나니  긴장이 풀려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고,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근 뒤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 냄새가 가득한 내 방에 들어가서 잘 준비를 하였다. 그리웠던 냄새였다. 흔적이었다. 헐렁헐렁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하고 소중했던 2020년의 크리스마스 지나간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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