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친구들!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 반짝거리던 보물들을 잘 숨기고 혼자 있을 때만 몰래 펼쳐서 바라보는 중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 철저한 경험주의는 철저히 쓰레기 취급을 받는 상황에 매 순간 닥치기 때문에 최대한 몸을 굽히고 사려야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를 보호하기 위한 거대한 껍데기를 만들어서 그 안에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달팽이처럼 나만의 집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이 닥쳐도 예전만큼의 누구와 공유하고 싶은 에너지도 그다지 있지 않았다. 나를 표현하는 말은 '뾰로롱'이었다고 웃어대던 친구들을 가끔 만나면 급 어두워진 내 얼굴에 놀라곤 했다. 사실 요 근래 인생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힘든 일을 겪고 있는데 그걸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친구들은 내 얼굴만 봐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긴말 없이 내게 찾아와 필요한 것들을 집안 곳곳 흔적으로 남기고 간다. 친구들이 이 준 선물들은 그들과 참 닮아 있었다. 그리고 나와도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아마도 우리를 닮아 있는 것 같다. 5평의 아주 작은 집에는 어둠이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따뜻한 것들 범벅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가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일 그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왜 이렇게 인생이 힘겨울까 싶다가도 감히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격한 사랑을 받는 역설적인 삶을 매 순간 살아가야 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며 나를 위로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내일이 두렵지 않다. 할 수 있다!
다시 뾰로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