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넓이
도시의 단독 주택 가운데는 땅이 50평도 안 되는 집들이 많다. 그런데도 마당도 있고, 경우에 따라 주차장까지 있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서는 단독 주택 땅 평수가 100평쯤 되면 그야말로 저택이다.
전원주택은 어떨까? 넓은 자연에 띄엄띄엄 들어서 있는 전원주택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 다르게 보인다. 도시에서는 대지 100평의 단독주택도 저택 수준이지만 시골은 다르다. 대지 100평에 건평 30평쯤 되는 전원주택은... 음 좀 심하게 말하면 '땅콩주택'처럼 보인다. 전원주택 맛이 별로 나지 않는다. 전원주택 하면 넓은 잔디 마당에 온갖 과일나무가 즐비한 뒷마당, 테라스가 딸린 그림 같은 빨간 지붕의 2층 집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넓은 땅이 필요할까?
톨스토이가 쓴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짧은 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바흠이란 사람은 땅 욕심이 많았다. 바흠은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족족 땅을 샀다. 세상에 믿을 것은 땅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바흠은 좋은 땅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그러다가 바쉬끼르인의 유목지까지 가게 된다.
바흠이 땅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안 바쉬끼르인 촌장은 바흠을 끝없이 펼쳐진 비옥한 땅으로 데려간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해가 뜨고 나서 출발해 해 지기 전까지 여기로 돌아오면 당신이 지나 온 땅을 모두 주겠소."
눈이 뒤집힐 정도로 흥분한 바흠은 다음날 해가 뜨기 무섭게 길을 떠났다. 멀리 가면 멀리 갈수록 자신이 차지할 땅이 많아진다는 생각에 뛰다시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해가 중천에 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바흠은 문득 너무 멀리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놀란 바흠은 서둘러 돌아가기 시작했다. 해는 점점 기울어져 갔다.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가지 못하면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얼마나 달려갔을까. 저 멀리 출발한 곳이 보였다. 촌장과 바쉬끼르인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는 점점 더 기울어졌다. 계란 노른자처럼 빛을 잃은 해는 금방이라도 지평선 아래로 사라질 듯 저공비행을 했다. 바흠은 뛰기 시작했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참고 달렸다.
다행히 바흠은 해가 지기 일보직전에 출발한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가 지나온 땅이 모두 그의 차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더운 날씨에 하루 종일 걷고, 마지막에는 심하게 뛰기까지 한 바흠은 도착 직후 쓰러지고 말았다. 놀란 사람들이 바흠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그는 입에 거품을 문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고는 잠시 뒤 숨을 거두고 말았다. 땅은 차지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고 말았던 것이다.
전원주택 마당은 얼마나 넓은 게 좋을까?
넓으면 넓을수록 좋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가장 적당한 넓이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이 될 것이다.
넓은 땅을 멋지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들여야 할 에너지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멋진 잔디밭과 아름다운 정원, 넓은 텃밭과 과수원 같은 뒷마당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 전원주택 중에는 그런 집이 많다. 지나다가 그런 집을 보면 누구라도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렇게 멋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엄청난 수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야생의 자연은 누가 가꾸지 않아도 절로 아름다움을 유지하지만 인간이 사는 전원주택 마당은 그렇지 못하다. 가꾸지 않으면 멋진 전원주택도 순식간에 귀곡산장이 된다.
만약 큰 마음먹고 장만한 전원주택이 대지 300평에 건평 50평쯤 되는 집이라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 집을 주말 주택으로 사용한다고 가정해보자. 펜션이라면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놀이와 휴식을 즐기다가 엉망진창이 된 집을 그대로 두고 떠나면 그만이다. 전원주택은 다르다.
1주일 동안 비워 놓았던 집 안팎은 여기저기 손봐야 할 곳들이 많다. 여름이면 마당과 텃밭에 잡초가 무성할 것이다. 300평쯤 되면 마당을 정리하는데만 적어도 반나절은 꼬박 걸릴 것이다(잔디밭과 텃밭에 물 주는데만 1시간 이상 걸린다). 마당 정리하느라 힘을 쓰고 나면 오후에는 몸져누워야 한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 쉬러 왔다가 일만 하고 가는 꼴이다. 땅과 집이 넓은 전원주택을 주말 주택으로 사용할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다 보면 찾는 횟수가 조금씩 뜸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1년에 한두 번 오가고, 그러다가 귀곡 산장이 되고, 그러다가 매물로 내놓게 된다.
주말 주택이 아니라 상주하는 집이라도 300평쯤 되는 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시킬 수 있다면 아무 문제없다. 노동은 피하고 예쁜 정원을 즐기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지 않고 손수 마당을 가꾸어야 한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만큼 땅을 가져야 한다. 넓다고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다. 투자용으로 구입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정원 가꾸기를 너무 좋아하고, 에너지 또한 넘치는 사람이라면 사정이 좀 다르다. 10여 년 전 처음으로 전원주택 생활자로 살기 시작했을 때 옆집 아저씨가 그랬다. 옆집은 대지 250평에 건평 45평쯤 되었다. 개인 사업을 하는 아저씨가 부인과 함께 살았다. 아저씨는 정원 가꾸기를 너무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쉬는 날이면 아침밥 먹고 마당에 나가서는 하루 종일 마당을 가꾸다가 해가 지면 집에 들어갔다. 점심도 마당 정자에서 도시락을 '까먹을' 정도였다. 자연히 잔디밭은 골프장처럼 반들반들했고, 잡초는 마음먹고 찾아야 겨우 토끼풀 두어 장이 전부였다. 이 아저씨쯤 되는 사람이라면 300평도 좁을 것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전원주택 마당은 1시간이나 2시간 정도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 되면 집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집을 위해 있게 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그 넓이는 대략 어느 정도 될까? 150평 정도? 그래서인지 몰라도 요즘 분양하는 전원주택 단지들은 대개 120평에서 150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고 보면 보면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