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안으로 30센티미터 정도 들여 구조물을 짓는 것이 안전하다
외출했다가 마당에 주차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늦게까지 마당에서 차나 술을 마시며 노는 사람들이 있지만 평일 저녁에는 그런 일이 잘 없었다. 궁금한 생각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9시가 넘은 밤이라 어느 집에서 나는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여러 명이 모여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밤에 누가 싸움을?'
궁금한 마음에 소리 나는 쪽으로 가 보았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최근 새로 집을 지어 입주한 A씨집 마당이었다. 어두컴컴한 마당에 들어서자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집주인인 A씨 내외와 낯익은 동네 사람 두 명이 보였다. 나머지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의 나이 든 아주머니가 목소리를 높여 A씨에게 뭔가 따지고 있었다. A씨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 대충 짐작이 갔다. 다만 상황상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언쟁을 높일 일이 있더라도 9시가 넘은 밤에 할 사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시와 달리 전원주택 단지는 밤 9시면 아주 한밤중이다.
사건의 재구성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1년 전 집을 지어 입주한 A씨. 집 본체만 완성한 상태에서 입주한 A씨는 살면서 이런저런 부대 공사를 했다. 대표적인 부대 공사가 옆 마당 데크 공사였다. 그 데크가 문제가 된 것이다.
편의상 목소리를 높인 이웃집 아주머니를 B씨라 하자. B씨는 서너 달 전 A씨의 옆집을 사기로 하고 계약을 했다. 이웃집이지만 단차가 4미터 이상 났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아랫집'이었다. 집 출입로도 서로 정 반대쪽에 있어 사실 붙어있기만 할 뿐 이웃집이라 할 수 없었다.
B씨가 계약을 하기 위해 집을 둘러보러 왔을 때만 해도 <그림1>처럼 되어 있었다. 아랫집 마당에 서서 A씨 집을 보면, 3미터 정도의 석축이 쌓여 있고, 석축 끝에서 약 30도 각도로 비스듬한 경사지가 1미터 정도 이어진 뒤 A씨 집의 마당이 연결되었다. 그런데 계약을 하고 3개월쯤 뒤 이삿짐을 싣고 와 보니 <그림2>처럼 석축을 따라 거대한 데크가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계약 당시에는 없었던 데크가 생겼으니 B씨 입장에서는 무척 황당했을 것이다.
B씨가 황당했을 것도 이해가 가고, 원래 계획에 있던 공사를 했을 뿐이 A씨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없던 데크가 생겨 속이 상한 B씨는 이사를 오자 마자 A씨 집과의 경계측량을 했다. 그 결과 A씨의 데크가 자신의 땅을 약 20센티미터 침범했다며 문제를 삼았다. A씨도 황당했다. 자신은 분명 자신의 경계 안에 데크 기둥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림3>에서 볼 수 있듯이 석축에는, A씨가 예전에 측량한 경계 측량용 빨간 막대가 있었다. 석축 공사가 끝나고 땅 매매 과정에서 이웃한 땅과의 경계 측량을 다시 한 흔적이었다. 따라서 A씨는 그 경계를 기준으로 자신의 땅 안에 데크 기둥을 세웠다. 하지만 새로 이사 온 B씨는 그 경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다시 경계 측량을 했다. 그러고는 <그림3>에서 볼 수 있듯이 A씨의 데크 기둥이 20센티미터 이상 자신의 땅을 침범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측량은 어느 정도 오차가 있다
A씨는 계약 당시와 이사 후의 상황이 달라져 속이 상한 B씨의 마음을 헤아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배려를 해주려고 노력했다. 데크 아래 나무를 심어 최대한 데크를 가려주려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런데 협상이 잘 안 된 모양이다. 그러고는 그날 밤 큰 소리가 난 것이다. 결론은 '데크를 잘라 내라'였다고 한다.
A씨는, 그렇다면 두 집의 입회 하에 다시 측량을 하고, 만약 자신의 데크가 조금이라도 침범했다면 데크를 잘라 경계 안으로 옮기겠다고 한 모양이다. 그리고 현재, 측량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 사건은 측량을 했는데도 문제가 된 경우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측량이라는 것이 100% 정확하지 않아 오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땅 안이라도 구조물을 세울 때는 적어도 경계에서 30센티미터 이상 안에서 시작하는 것이 뒤탈이 없다. A씨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석축 위에 앙카를 박고 기둥을 세워야 하다 보니 그 원칙을 지킬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자연히 경계에 바짝 붙여 공사를 했고, 그것이 오차 범위 안에 들어가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한 뼘도 안 되는 땅을 갖고 왜 그럴까? 하며 의아해하겠지만 전원주택에서는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다. 전원주택 마당에는 있던 구조물도 없어지고, 없던 구조물도 생기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구조물뿐 아니라 나무를 한 그루 심어도 가지가 남의 땅으로 넘어갔네 어쩌네 하면서 갈등의 씨앗이 잉태된다. 그러다가 다른 서운한 일로 속이 상하게 되면 경계를 문제 삼으면서 갈등을 증폭시키게 된다. 이래저래 전원주택에서 경계 문제는 처음부터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뒤탈의 여지를 없애는 현명한 방법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