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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Mar 29. 2022

컨테이너, 절대 갖다 놓지 마라

깊은 산속이 아니라면...

지금 사는 곳에 집을 짓고 산지도 10년이 되어 간다. 10년도 더 전에 여기저기 땅을 보러 다니다가 지금 사는 동네를 만났다. 야트막한 야산을 개발한 업자는 약 200평씩 쪼개 30여 필지를 만들어 분양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필지를 사서 2년 뒤 집을 지었다. 단지에 들어선 8번째 집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가구수는 24집으로 늘어났다. 여전히 빈터로 남아 있는 땅도 10여 필지나 된다.  


땅을 살 때는 누구라도 금방 집을 지을 것처럼 생각한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변수들이 생기고, 집 짓는 일은 자꾸 뒤로 미뤄진다. 10여 년째 집을 안 짓고 있는 땅의 주인들도(지나는 길에 가끔 한 번씩 들린다) 어쩌다 길에서 만나면 "올해는 지어야죠."하던 사람들이다. 그 사이, '부모님을 모시고 전원생활을 할 계획'이라던 어떤 땅의 주인은, 땅을 산 궁극적인 이유가 되었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도 했다. 이런 경우가 동네에 몇 집 된다.  


헛돈의 미학


빈터로 남아 있는 10여 필지 중 컨테이너를 갖다 놓은 땅이 서너 곳 된다. 나는 그들이 왜 컨테이너를 갖다 놓았는지 잘 안다. 그 컨테이너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 컨테이너를 갖다 놓았고, 어떤 용도로 활용되다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아주 가까이서 실시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땅을 사놓고 나면 한동안 참 부지런히 찾아온다. 대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다. 지나는 길에 들러 땅이 잘 있나 보고 가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구경을 시켜 주기도 한다. 좀 더 부지런한 사람들은 고구마나 감자 같은 것을 심어 먹기도 한다.  


자주 오다 보면 이런저런 불편한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기 땅이라고 먼길을 달려왔는데, 막상 와보면 햇볕을 가릴만한 나무 한 그루 없다. 어디 앉을만한 곳도 없다.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리해 분양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럴 즈음 사람들은 '아쉬운 대로 컨테이너라도 하나 있으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유혹에 절대 빠지면 안 된다. 한마디로 '헛돈' 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누가 쓸만한 컨테이너를 공짜로 갖다 준다면 모를까, 돈을 주고 사서 갖다 놓아야 한다면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쓸만한(적어도 여름철 낮잠이라 한 숨 잘 수 있을 정도의) 컨테이너를 갖다 놓으려면 적어도 3백 내지 5백만 원은 들여야 한다. 거기에다 운반비와 설치비(크레인이나 지게차를 불러야 한다)도 무시하지 못한다. 문제는 컨테이너가, 컨테이너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하려면 수도 시설과 화장실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 컨테이너만 갖다 놓아서는 창고 말고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깊은 산속이라면 컨테이너도 훌륭한 별장이 된다


컨테이너만 갖다 놓아도 아주 쓸모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 땅이 동네에서 외떨어진 산속일 경우다. 뒤에 숲이 있고, 조금 걸어가면 졸졸 흐르는 수준이지만 개울도 있다면 컨테이너만 갖다 놓아도 훌륭한 별장이 된다. 그런 곳이라면 비록 컨테이너지만 친구들을 불러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곳이라면 번듯한 집보다 오히려 더 운치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곳이라면 수도 시설이 없어도 큰 문제가 안된다. 대충 하룻밤 사용할 물만 차에 실어 가면 된다. 화장실이 없어도 별 문제 되지 않는다. 지천이 노천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는 자연인이다'비슷하게 지낸다면 하룻밤 정도는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 하룻밤이 아니라 컨테이너를 베이스캠프 삼고, 옆에 텐트라도 친다면 여름 한 철 무릉도원처럼 지낼 수도 있다. 



산속이나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곳이라면 컨테이너도 훌륭한 주말 주택이 될 수 있다. 


구입한 땅이 사람들이 지척에 사는 전원주택 단지 한가운데라면 이런 상황은 절대 기대할 수 없다. 바로 옆에 일상생활을 하는 집들이 있는데, 그 사이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 낭만이 있을까? 낭만은커녕 무척 어색하다. 본인들도 어색하고, 그런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이웃들도 어색하다. 그런 곳에 친구들을 데리고 갈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도 고집을 부려 컨테이너를 갖다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한두 번 오가다가 결국에는 발길을 끊고 만다.  



전원주택 단지에 가져다 놓은 컨테이너는 대략 이런 모습이다. 운치나 낭만과 무척 거리가 멀다. 



비싼 돈을 들여 가져다 놓은 컨테이너는 녹이 슬면서 점점 흉측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더 가기 싫어진다. 발길이 점점 뜸해지다 보면 결국에는 방치 수순을 밟는다. 그러다가 집을 짓거나 사정상 땅을 팔게 되면 애물단지가 된다. 돈 들여 산 컨테이너를 돈 들여 없애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이 전원주택 단지 땅에 가져다 놓은 컨테이너들의 일반적인 운명이다. 


수도와 정화조가 없는 컨테이너는 무용지물


물론 전원주택 단지 안에 가져다 놓은 컨테이너가 제 역할을 잘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지하수를 파고, 정화조를 묻어 물과 화장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옹색하지만 가끔 들러 하룻밤 정도는 지낼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지하수를 파는데 800만 원 이상 든다. 정화조를 묻는데는 500만 원, 컨테이너 안에 화장실과 싱크대를 설치하는데도 최소 200만 원은 든다. 게다가 전기 시설도 갖춰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것들은 설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하수와 정화조는 필연적으로 적절한 관리를 해 줘야 한다. 방치하면 문제가 생긴다. 특히 겨울이 되면 화장실도 얼고, 지하수도 동파될 수 있다. 사람이 살면 적절한 관리를 통해 그런 사고들을 미리 막을 수 있지만 컨테이너에서 겨울을 날 수는 없으니 관리가 쉽지 않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정화조와 지하수는 모두 일정한 공간을 차지한다. 정화조 탱크가 들어가는 콘크리트 박스의 경우 크기가 대형 SUV 차량보다 크다. 지하수 모터가 들어가는 콘크리트 박스도 가로 세로 깊이가 1미터 이상 될 정도로 크다. 이 둘은 한 번 자리를 정하고 나면 옮길 수 없다. 그러므로 지하수와 정화조를 팔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나중에 집을 지을 때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컨테이너는 갖다 놓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도 갖다 놓고 싶다면 수도와 전기, 정화조를 같이 설치해야 그나마 쓸모가 있다. 정화조와 지하수를 팔 때는 무척 신중하게 생각해 훗날 집의 바닥이 될 부분을 피해야 한다(그렇게 하려면 집의 기본 설계가 나와야 하는데...참 어렵다) 


동네 컨테이너들의 운명


지금도 우리 집 2층 창문에서 내다보면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은 땅이 둘 씩이나 보인다. 편의상 A와 B로 구분해 보자. A컨테이너는 가져다 놓은 지 5년쯤 된다. A컨테이너에는 수도와 정화조까지 다 설치된 상태다. A컨테이너 주인은 컨테이너를 설치 한 뒤 자주 왔다 갔다 했다.  


어느 해 겨울이다. 며칠 동안 날씨가 엄청 추웠다. 그러자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 뒤, 날씨가 풀렸다. 그래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빈 컨테이너였는데 그 앞을 지나다 보면 물소리가 졸졸 났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 연락을 했더니 주인이 나타났다. 기온이 심하게 떨어지면서 화장실 배관이 동파되었다가 날씨가 풀려 녹으면서 물이 샜던 것이다. 작은 화장실은 금방 차 올라 버렸고, 물은 문턱을 넘어 방으로 사용하던 컨테이너 안까지 넘쳐 버렸다. 결과는 컨테이너 안이 수영장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 1년에 한두 번 나타나고 있다.


B컨테이너의 경우, 수도와 화장실도 없이 컨테이너만 갖다 놓았다. 이 땅의 주인은 참 부지런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한 달에 한두 번 꼭 왔다. 봄이면 고구마도 심고, 꽃도 심었다. 그럴 때마다 불편했는지 어느 날 컨테이너를 갖다 놓았다. 일하고 옷이라도 갈아입으려면 필요할 듯했다. 


그 컨테이너는 딱 그런 용도로 쓰이고 있다. 삽이나 곡괭이 같은 연장을 보관하고 일하러 왔다가 탈의실 정도로 사용하는 정도다. 그렇다면 일하러 왔다가 낮잠이라도 한 숨 잘 수는 있을까? 1년 365일을 통틀어 컨테이너에서 낮잠을 달콤하게 잘 수 있는 기간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겨울에는 추워서 못 자고, 여름에는 더워서 못 잔다. 여름 한낮의 컨테이너 안은 아마 40도쯤 될 것이다. 결국 낮잠을 달콤하게 자려면 봄가을 중에 기막히게 타이밍을 맞춰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화장실과 전기가 없으니 밤에는 사용할 수도 없고, 결국 가져다 놓는 비용과 수고에 비해서는 별 쓸모가 없다. 


B컨테이너 주인 역시 요즘에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고 있다. 아마 컨테이너를 갖다 놓으면 '살림을 차릴 정도'로 잔뜩 기대했다가 막상 가져다 놓고 보니 기대에 못 미쳐 그런 것 같다. 결론은 컨테이너가 땅 활용에 의미 있는 변수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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