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기술자들에게 큰 책임과 사명감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처음 전원주택을 지을 때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콘크리트 바닥 기초가 굳고 나자 외장(골조) 목수팀이 투입되어 집의 뼈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며칠 뒤, 우리의 계약 당사자인 건축업자가 목수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목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 다 짓고 나면 오세요. 초대할게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내 집을 지어준 고마운 사람들이니 집을 짓고 나면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 말에 목수들은 눈만 끔뻑끔뻑하며 나를 쳐다볼 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과연 목수들을 집들이에 초대할 수 있었을까?
답은 ‘아니오’였다. 나는 그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집이 마무리되어가면서 목수들을 초대하겠다던 내 생각이 얼마나 건축 현장 생리를 모르고 한 말인지 알게 되었다. 외장 목수들이 집의 뼈대를 세우는 일을 끝내고 빠지면 내장 목수를 비롯해 다른 공정의 팀들이 들어와 각자 맡은 일을 한다. 목조주택 한 채를 완성하기까지 투입되는 전체 인원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01. 설계 - 1명
02. 지하수 - 3명
03. 터 닦기 - 2명
04. 콘크리트 기초 - 4명
05. 골조 목수팀 – 4명
06. 비계 설치 - 3∼4명
07. 내장 목수팀 - 4명
08. 바닥 미장 - 2명
09. 지붕 - 3명
10. 외벽 - 3명
11. 전기 - 1∼2명
12. 배관 - 1∼2명
13. 마루 - 2명
14. 도배 - 3명
15. 타일 - 2명
16. 타일 줄눈 넣기 - 1∼2명
17. 창문 - 2∼3명
18. 싱크대, 붙박이장, 신발장 – 2명
19. 보일러 - 1명
20. 우수배관 - 2명
21. 정화조 - 2명
22. 주차장 - 2명
23. 조경 - 4명
24. 뒷정리, 쓰레기 치우기 - 1명
25. 기타 – 굴삭기, 덤프 등등
이 많은 팀들이 각각의 공정에 맞춰 투입되었다가 일을 끝내고 빠져나가면 집이 완성된다. 사람 수로 따지면 대략 50∼60명이다. 이들 각 팀은 혼자 일 하는 경우도 있고, 목수들처럼 3∼5명이 한 팀을 이뤄 일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집주인의 계약 당사자인 건축업자에게 소속되어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정답은 ‘한 명도 없다’이다. 건축업자는 그저 각각의 공정에 맞춰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불러 일을 시킬 뿐이다. 결국 '집'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란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다양한 기술자들이 각각의 공정에 투입되어 맡은 일을 하고 빠져나가는 과정이다(정화조나 지하수, 조경, 허드렛일 하는 사람들처럼 그 지역 사람들이 하는 공정도 있다).
능력 있고 양심적인 건축 업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그 가운데 하나가 그들에게 그렇게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 지역에서 늘 일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오늘은 여기서 일하지만 내일은 전국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두 번 다시 올 일이 없는 어느 전원주택 건축 현장에 투입되어 일을 하면서 무슨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하겠는가?(팀원이 부족할 경우, 당일 아침 인력 시장에서 보충해 데려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자기들끼리도 서로 모르는 사람일 때가 있다.)
이것은 그들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건축 현장의 생리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신 능력 있고 양심적인 건축업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업자로 하여금 현장 기술자들이 해야 할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을 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주인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기대해야 할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다.
양심적이고 책임감 있는 건축업자라면 현장 기술자들을 적절히 관리하고, 대우도 정당하게 해 줄 가능성이 많다. 건축업자로부터 효과적인 작업 지시와 정당한 대우를 받는 팀이라면 자신들이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건축업자에게는 직원은 아니지만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직원처럼 일해 줄 기술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기술자들은 건축업자와의 관계 때문에라도 자기가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 낼 가능성이 높다. 건축업자 선정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집이 거의 완성되어 갈 때쯤, 나는 우리 집의 골조를 담당했던 목수들이 근처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몇몇은 경상도 어디쯤에서 일하고, 몇몇은 전라도 어디쯤에 있다는 '소문'만 들렸다. 경상도 어디쯤에 있다는 사람에게 ‘집들이를 하니 오세요’, 한다고 해서 그들이 선뜻 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것이 내 집을 지어준 고마운 목수들을 집들이에 초대하지 못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