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추운 집은 여름에 덥고 방음도 안된다
집 안의 문이란 문은 꽁꽁 닫고 앉아 있는데도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린다면? 목소리 내용과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쉽게 가늠되고, 그들의 현 위치가 어디쯤인지 파악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면? 단열이 제대로 안된 집이라 할 수 있다.
전세 살이 했던 궁전 같은 그 집이 그랬다. 멀리서 들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좀 더 크고 똑똑하게 들린다 싶으면 곧이어 나무 데크 밟는 소리가 났다. 데크에서 현관문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면 거의 정확하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민소매를 입은 영화배우가 살 것 같았던 그 집에서 하루에 한두 번 경험하는 현상이었다. 단열이 시원찮다 보니 방음도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히 우리 집을 찾아온 사람들이 초인종을 누르기 훨씬 전부터 집 안에서 그들의 출현을 알 수 있었다.
전원주택을 사거나 전세로 얻기 위해 집을 보러 갔을 때, 그 집의 단열 상태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살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방음 상태를 살펴보면 된다. 소리가 새어 나가고 들어가는 그 공간을 따라 한기와 열기도 이동하기 때문이다. 방음이 잘 안 된다는 것은 단열도 잘 안된다는 뜻이다.
방음이 잘 되는 집은 창문을 열었다가 닫았을 때 순간적으로 바깥의 소음이 차단된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그런 느낌이 잘 안 든다면 방음에 문제가 있는 집이고, 반드시 단열에도 문제가 있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창문을 닫은 상태에서 마당으로 나가 집 안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해 보면 된다. 방음이 잘 되어 있는 집은 대화가 쉽지 않다.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옆집 아저씨는 오늘도 실험 중
궁전 같은 집에서 우리가 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같은 업자가 지은 옆집도 우리와 비슷하게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옆집에는 60대 후반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집 역시 벽체 구성이 우리와 똑같았다.
실내-벽지-석고보드1-석고보드2-단열재(인슐레이션)-합판-방수천-시멘트 사이딩-실외
옆집 역시 영화배우가 살 것처럼 외관이 멋진 집이었지만 추위는 비켜 갈 수 없었다. 사실 옆집 아저씨는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집은 멋져 보였지만 연륜이 있다 보니 내실이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던 것이다. 하지만 멋진 외관과 예쁜 마당에 반해버린 아주머니가 하도 조르는 바람에 덜컥 사고 말았다고 했다. 그 때문에 날마다 아주머니를 구박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날 옆집에 놀러 갔더니 거실에 실내용 가스난로가 켜져 있었다. 추워서 하나 들여놓았다고 했다. 기름보일러는 아무리 많이 돌려도 기름 값만 많이 나오고 도대체 집이 따뜻하지 않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가스난로를 껴안고 살다시피 하는 모양이었다.
며칠 뒤, 커피를 한 잔 얻어 마시러 갔더니 집 앞에서 아저씨가 차에 뭔가를 싣고 있었다. 뭐냐고 물어보자 석유난로라고 했다.
“석유난로를 하나 샀는데, 불량이야. 바꾸러 가려는 참이야.”
“석유난로요? 가스난로는 어쩌시고...”
“가스난로는 켤 때뿐이고, 집 안이 도대체 훈훈해지지가 않아. 가스난로는 중독 사고 위험도 있다네. 마누라가 골로 갈 뻔했어.”
아저씨는 어릴 때 집에 석유난로가 있었다고 했다. 석유난로가 빨갛게 타면 집안 전체가 훈훈했던 기억이 있어 석유난로를 사 왔다고 했다. 그날 밤 아저씨네 갔더니 석유난로가 거실 한가운데를 떡 차지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이제야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며칠 뒤 가보니 석유난로가 사라지고 없었다. 석유난로 이야기를 하자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석유 타는 냄새에 머리가 너무 아파 치워버렸다고 했다. 그때 아저씨가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였다.
“아무래도 연탄보일러를 놔야 할까 봐.”
속으로는 ‘끼악’ 했지만 내 입에서는 “네 그게 싸고, 집도 따뜻할 것 같아요”라고 덕담 비슷한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 집은 지하 창고가 운동장만큼 넓어 연탄보일러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은 충분했다. 당시 연탄 한 장에 500원쯤 했다. 세 장 들어가는 연탄보일러에 하루 네 번 연탄을 갈면 하루에 12장이 필요했다. 한 달이면 360장이 되는데, 장당 500원이면 18만 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왔다.
며칠 뒤, 옆집 아저씨는 연탄보일러를 설치했다. 연탄도 통 크게 한 번에 1천 장을 들여놨다. 보일러실이 운동장만큼 넓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그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따뜻하게 살 수 있었을까?
연탄난로로 바꾸고 난 뒤에도 그 집에 가보면 그렇게 따뜻한 것 같지 않았다. 대신 아주머니는 연탄 갈기가 여간 힘들지 않고, 한 번에 3장씩 하루 4번을 갈려면 가스를 너무 마셔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다며 투덜거렸다. 아저씨도 "들여놓은 연탄 다 떼고 나면 막살해얄것 같어"했다.
얼마 뒤 우리는 이사를 하면서 그 동네를 떠났다. 시간이 좀 많이 지난 어느 날 지나는 길에 인사차 들렀더니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펠렛 보일러가 싸고 따뜻하다네, 아무래도 그걸 놔야 할까 봐...”
‘허걱...’
믿기지 않는 이야기 같지만 조금의 과장도 없다. 이 아저씨는 지금도 그 집에 잘 살고 계신다. 최근에 들렀더니 다행히 펠릿 보일러는 아직 설치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신 “벽을 완전히 뜯고 외단열을 해야 할까 봐...”했다. 견적을 뽑았더니 대략 1천5백만 원이 나왔다고 했다.
겨울에 추우면 여름엔 반드시 덥다
전원주택을 짓거나 구입할 때 많은 사람들이 외관과 전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지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열(방음도 포함해)이다. 멋진 외관은 한 달이면 시들해지고, 멋진 전망도 6개월이면 무감각해진다(어쩌다 오는 손님들은 좋아 죽을라 하겠지만). 이에 비해 부실한 단열은 겨울만 되면 이사를 가거나 집을 뜯어고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만든다.
참고로 단열이 시원찮은 집은 여름에 엄청 덥다. 연일 최고 기온을 갱신하며 사람들을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던 어느 날, 해가 지고 바람이 살랑거리는 초저녁에 아저씨네에 들렀다. 두 사람이 데크에 나와 앉아 있었다.
“왜 나와 계세요?”
“아이쿠, 정수리가 '뜨끈뜨끈'해서 집안에 앉아 있을수가 있어야지.....”
전원주택을 짓거나 살 때 단열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건축업자나 부동산 중개인의 말만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잘 모를 수도 있고, 세상에는 훌륭한 건축 업자와 부동산 중개인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