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보수비는 반드시 하자보수가 끝난 다음 지급
10여 년 전, 아파트 전세를 빼 양평에 땅을 샀다. 짐은 사무실로 쓰던 작은 아파트로 옮겼다. 턱없이 부족한 공간, 온갖 살림살이를 풀어놓았으니 아파트 전체가 창고가 되었다. 몸 놀릴 공간은 고사하고 숨 쉴 공간도 부족했다.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구세주가 등장하셨다. 우리에게 땅을 판 그분이었다. 그분은 야트막한 산자락을 개발해 대지로 만든 뒤 분양을 했는데, 우리가 산 땅도 그 가운데 한 필지였다. 40여 필지를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분양이 잘 안 되다 보니 입구에 집을 한 채 지었다. 일종의 바람잡이용으로 지은 집이었다.
땅 계약을 하고 잔금을 치를 즈음, 그 집이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 사정을 알게 된 그분은 싼 값에 전세로 줄테니 팔릴 때까지 살라고 했다. 빈집으로 두는 것보다는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땅을 분양하는데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에게는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신축 노출 콘크리트 35평짜리 전원주택을 전세 3천5백만 원이라는 기막힌 가격에 살게 되었다. 우리의 전원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단지 내에 들어선 유일한 집이다 보니 황량하고 무섭긴 했지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아침마다 새소리에 잠을 깬 뒤 멀리 남한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며 아침을 먹었다. 실내 인테리어가 좀 촌스러운 단점이 있었지만 콘크리트로 지은 그 집은 벽체 두께가 40센티미터가 넘어 집 안에 앉아 있으면 절간처럼 조용했다. 게다가 사방 5백 미터 안에는 다른 집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그야말로 자유롭게 살았다.
복병의 출현
서울에 사는 주인아저씨가 지나는 길에 가끔 들렀다. 그때마다 "집에 어디 이상 있는지 잘 봐줘요"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신축 집이다 보니 여기저기 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물이 안 나와 여기저기 살펴보았더니 전날 밤에 내린 비에 마당에 있는 지하수 펌프가 물에 잠겨 있었다. 펌프가 들어있는 곳을 높게 둘러쳐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하는데 너무 낮게 한 것이 원인이었다. 지하수 업자가 드나들며 고치느라 집이 어수선했다. 당연히 하루 종일 물이 나오지 않았다.
지하수 모터 침수 사건을 시작으로 온갖 종류의 하자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2층에 있는 보일러 분배기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마룻바닥이 들고일어나 교체 공사를 했다. 기온이 떨어지자 하수관이 얼어 싱크대 물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기온이 더 내려가자 싱크대 수도가 얼어 물이 나오지 않았다. 군데군데 뜨는 벽지는 애교였다.
2층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면 1층 화장실 천장에 물방울이 맺혔다. 2층 화장실 바닥을 뜯어내고 다시 타일 작업을 하느라 며칠 동안 집안은 소음과 먼지로 범벅이 되었다. 이 말고도 사소한 보수가 끝없이 이어졌다. 한 번은 거실 천장 보수 공사로 2주 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무실에서 생활해야 했다. 보수 공사를 하러 왔던 사람들은 공사만 해 놓고 현장은 어질러둔 채 그대로 사라졌다.
신축 전원주택 전세 3천5백만 원이라는 기막힌 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탈출 계획을 세웠다. 살다 보니 손볼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일일이 주인아저씨에게 보고 하고, 그때마다 공사 일꾼들이 집에 드나들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결국 6개월 만에 그 집에서 나왔다. 주인아저씨도 내심 미안했는지 나가려고 하는 우리를 붙잡지 않았다.
사실 주인아저씨가 우리에게 미안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는 그분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갈 곳 없는 우리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었으니까. 문제는 집을 허투루 지은 업자에게 있었다. 제대로 집을 지었으면 우리가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자’보다 ‘보수’가 더 중요하다
집을 짓다 보면 어느 정도는 하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서로 모르는 수많은 팀들이 들어와 각자 맡은 일을 하고 빠져나가는 것이 집을 짓는 과정이다. 따라서 업자가 아무리 관리 감독을 잘한다고 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집을 지으면 어느 정도 하자는 각오해야 한다.
문제는 하자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보수가 이뤄지느냐 하는 것이다. 전세 3천5백에 살았던 그 집은 하자도 많았지만 보수 공사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집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견되어 주인아저씨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면 순식간에 업자가 사람을 보내 보수를 해 주었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저 보수 공사하느라 집안을 드나들며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그 사람들이 얄미웠을 뿐이다. 그런데 집을 몇 번 짓고 난 지금 돌이켜보니 그 점은 경이로워할 만했다.
보수 작업이 제깍제깍 이뤄졌던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집을 지어줄 건축업자를 물색해 계약을 하기 전까지는 집주인이 갑이고 건축업자가 을이다. 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건네는 순간, 집주인과 건축업자의 관계는 바뀐다. 건축업자가 갑이 되고 집주인이 을이 된다. 집 공사가 시작되고, 중간 결제금까지 건네고 나면 집주인은 을이 아니라 ‘병’이나 ‘정’쯤 된다.
‘병’이나 ‘정’쯤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집 건축이 끝나고 입주를 하게 되는데, 그 이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각종 하자다. ‘병’의 처지에서는 이미 슈퍼 갑이 되어 버린 건축업자를 상대로 하자 보수를 요구해야 한다. 당연히 잘 먹히지 않는다. 여러 번 전화를 하고, 읍소를 하고, 그러다가 큰 소리가 오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세 3천5백 짜리 그 집은 사정이 달랐다. 전화만 하면 하자 보수 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그 이유는 주인아저씨가 하자 보수비로 책정해 놓은 돈을 업자에게 지급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받을 돈이 남아 있었던 업자는 돈을 받기 위해 그렇게 신속하게 하자 보수 작업을 해 주었던 것이다.
하자보수비는 하자 보수 기간이 끝난 다음에 지급
업자와 건축 계약을 하다 보면 하자 보수에 관한 항목이 있다. 이 항목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전체 공사 금액의 일정 액수를 하자 보수 기간이 끝난 뒤에 지급하는 것으로 해야 한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정식 계약 전에 업자를 여러 번 만나게 된다. 경우에 따라 안면 있는 업자와 건축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책정된 하자보수비를 하자 보수 기간이 끝난 다음에 지급하겠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흐지부지 넘어가고 만다.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책정된 하자보수비는 반드시 하자 보수 기간이 끝난 다음에 지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체 건축비에 엄연히 하자보수비가 책정되어 있고, 집주인은 하자 보수를 요구할 권리가 있는데도 아쉬운 소리를 여러 번 해야 하자 보수를 받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속앓이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동네에는 공무원으로 정년을 마치고 최근에 전원주택을 지어 살기 시작한 아저씨가 있다. 이 아저씨는 공무원 출신이다 보니 건축업자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정확하게 공사비의 10%를 하자보수비로 책정을 해 두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업자는 공사가 끝난 뒤에도 하자 보수를 곧잘 해 주었는데, 그때마다 책정된 하자보수비의 일부를 조금씩 지급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연락을 해도 잘 나타나지 않더라고 했다. 여기저기 손봐야 할 곳도 많고, 아직 제법 많은 돈의 하자보수비가 남은 상황에서 말이다. 그러다가 업자는 결국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하자 보수를 안 해 주기로 마음먹은 대신 하자보수비로 책정된 돈도 포기한 셈이었다. 이것이 집주인과 업자와 하자보수비 사이의 역학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