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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May 23. 2022

나는 친이웃형 인간인가?

주거 환경이 사람의 생활방식에 미치는 영향

지금 나는 전원생활을 한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 도시에서 살다가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온 사람들이다. 원주민이 없고 전부 외지 사람들이 보니 텃세 부리는 사람도 없고, 모두들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사이가 워낙 좋다 보니 어느 집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대충 파악이 될 정도다. 마을이 막 형성되던 초창기만 해도, 주말이면 아침 먹고 집에서 나와 이 집 저 집 배회하다(우리 집 앞을 몇 번 지나가기도 하고) 밤중에야 집에 들어갈 때도 있었다. 지금은 동네가 커지면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멀리 사는 형제자매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훨씬 더 낫다는 이웃사촌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친사회적인', 좀 범위를 좁히면 '친이웃형 인간'일까?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친사회적인 인간'인지 아닌지는 좀 생각을 해 봐야 하겠지만 '친이웃형'인지 아닌지는 비교적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내가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 보면 말이다. 


지금, 전원주택 생활자로 살고 있는 나는 제법 '친이웃형 인간'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하지만 내가 전원생활을 하기 전의 삶을 되돌아보면 전혀 아니올시다다. 



야외 테이블에서 이웃들과 술잔을 부딪히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전원생활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노력이 필요하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구할 무렵, 나는 직장이 홍대 앞에 있었고 아내는 인천 시청 근처에 있었다. 한쪽으로 몰면 한 사람의 출근길이 너무 힘들 것 같아 물리적으로 딱 중간 지점에 집을 얻자고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해서 구한 곳이 구로구 궁동이었다. 궁동에는 지하철 7호선과 1호선이 지나는 온수역이 있었다. 그곳에서 인천 시청까지 전철로 32분 걸렸고, 홍대 입구까지는 34분이 걸렸다. 정말 공평한 위치였다. 


우리가 구한 신혼집은 역에서 걸어 15분쯤 떨어져 있었다. 서울의 끝자락이었고,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있는 빌라 지역이었다. 베란다 문을 열면 바로 산자락이라 손을 좀 위험하게 내뻗으면 나뭇가지가 잡힐 정도로 전원적이었다. 전원주택은 아니었지만 전원 빌라쯤 되었다고나 할까. 


아, 나는 얼마나 비이웃적 인간이었던가


집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집에서 3년 정도 살았다. 그곳에 사는 동안 나는 '친이웃형 인간'이었을까? 답은 전혀 아니올시다다. 옆집은 물론이고 아랫집과 윗집, 어느 누구와도 사귀지 못했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도시 직장인이었음을 감안한다고 해도 '비이웃적'이거나 심하게 말해 '반이웃적'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패턴을 보여준 것이 나의 궁동 살이었다. 결국 3년을 사는 동안 인사를 나누고 사는 동네 사람 한 명 만들지 못하고 이사를 나왔다. 주차 문제로 옆 동의 어떤 아저씨와 실랑이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그 동네에 사는 동안 이웃과 나눈 유일한 '개인적인 대화'였다. 


두 번째로 삼은 삶의 터전은 일산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그 오피스텔에 1년을 살았다. 오피스텔이라는 주거 공간을 감안한다고 해도, 인사를 하고 다닌 사람이라고는 주차 박스에 앉아 있던 경비 아저씨가 유일했다. 


오피스텔에서 나와 이번에는 파주 출판도시 근처의 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2년을 살았다. 그 아파트에서는 옆집 사람과 사이좋게 지냈을까? 안타깝게도 아니올시다다. 옆집 사람 얼굴도 못 보고 이사를 나왔다.  


다시 일산으로 갔다. 풍산역 앞에 있는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에서 2년을 살았다. 패턴이 똑같았다. 2년 동안 옆집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다가 우연히 만나면 인사라도 하고 지낸 사람은 중간 어디쯤에 산다는 아프리카 가족이 유일했다. 그래 봤자 2년을 사는 동안 아는 채 한 것이 서너 번 될까? 그리고 양평으로 이사를 왔다. 


주거 환경이 삶의 스타일에 미치는 영향, 분명 있다


양평으로 와서 한 동안 전원주택 전세살이를 했다. 첫 번째 전셋집 옆에 60대 부부가 살았다. 마당 가꾸기를 '병적으로 좋아한다'던 바로 그 옆집 아저씨 내외다. 옆집 아저씨는 나와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말을 건넸다. 그러고는 늘 자기 집 마당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한가한 날이면 옆집 마당으로 넘어가 수다를 떨었다. 마당에서 수다를 떨고 있으면 아주머니가 먹을 것을 갖고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다. 그러다가 밥때가 되면 가끔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그 집에서 1년 동안 살았다. 그동안 유일한 옆집이었던 그 집과 자주 왕래했다. 우리 집 마당에서 고기라도 구우면 아저씨를 불러 고기 몇 점과 술 한 잔을 대접했다. 옆집 아주머니는 뭐 맛난 것이라도 생기면 갖다 주곤 했다. 우리는 설이나 추석이면 식용유 세트라도 갖다 드렸다. 도시에서 사는 동안 내가 보였던 삶의 스타일과 비교해보면 천지가 개벽할 노릇이었다.  


1년 뒤, 우리가 살던 집이 팔렸다. 전세 난민이었던 우리는 그 집에서 약 150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다. 역시 전세였다. 허허벌판에 오뚝하니 서 있는 집이라 이웃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옆집이 10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젊은 부부가 유치원생 남매를 데리고 한 달에 한두 번 오갔다. 교류를 할 기회가 없는 조건이었다. 그런데도 그 집에 두어 번 놀러 갔다. 그리고 1년 4개월 뒤, 마침내 전세 난민 시대를 접고 우리 집을 지어 이사했다. 

 

양평에 산지 10년이 넘었다. 양평으로 이사 오기 전,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누가 봐도 '친이웃형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제법 '친이웃형 인간'이다. 그렇다면 나의 무엇이 나를 그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예전과 지금의 내 모습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오직 '주거형태'뿐이다. 그렇다면 소극적으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주거 형태에 따라 사람은 '비이웃적'이 되기도 하고, '친이웃적'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삶에 '주거형태'는 제법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친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분석이다. 필요한 만큼만 알아들었으면 한다. 다시 도시의 아파트나 빌라로 이사를 간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해도 나는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누가 죽어나가는지도 모른 체 살아갈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기본적으로 '비이웃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삶의 주거 형태가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이유로 도시에서 산다 하더라도 주거 형태에 대해 조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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