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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Jun 24. 2020

지갑 대소동

전원 살이가 주는 즐거움 

일요일 아침, 동네 단체 톡이 시끄러웠다. 늦잠을 즐기고 있다가 슬쩍 곁눈으로 보니 동네 사람 몇 명이 마을 뒷산에 올라가는 것 같았다. 같이 갈 사람을 모으는가 싶었는데 이불속에서 미적거리는 사이 이미 산을 오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30여 분 뒤 다시 톡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동네 사람들이 정상으로 정해 놓은 작은 바위 봉우리에 모여 앉아 귤을 까먹다가 누군가 사진을 찍어 카톡에 올렸다. 양평 읍내가 한눈에 보이는 것이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20여 분이 또 흘렀다. 톡이 다시 시끄러웠다. 산을 내려온 사람들과 집에서 늦잠을 잔 사람들이 아랫집 마당에 모여 점심을 어떻게 할까, 갑론을박 중이었다. 누구는 어느 집에 가면 늘 맛난 것이 많으니 거기로 가자고 하고, 누구는 읍내에 나가 자장면을 먹자고 했다. 잘하면 점심을 얻을 먹을 것 같아 카톡을 열어놓고 관망했다. 


그때 또 톡이 울렸다. 방금 산에서 내려온 옆집 아저씨였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어 동네에서 문어 아저씨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문어 아저씨는 산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다시 올라가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애절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비비는 이모티콘과 함께 ‘도와주세요〜’하고 톡을 날렸다. 


점심 얻어먹으려다 못 볼 걸 본 나는 구시렁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벌써 뛰어나온 몇몇 아저씨들이 산자락 앞에 모여 있다가 나를 보더니 얼른 꼭대기에 가보란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자 내가 가장 젊고, 자기들은 이미 등산을 해서 다리에 힘이 없으니 갈 사람은 나뿐이라고 했다. 지갑을 잃어버린 문어 아저씨는 아무래도 꼭대기에서 귤 먹는다고 바위에 걸터앉았는데 그때 흘린 것 같다고 했다. 


입이 이만큼 나왔지만 어쩌랴! 구시렁대며 올라갔다. 힘들게 올라가 보니 귤을 까먹은 흔적은 있었지만 지갑은 없었다. 내려오면서 길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없었다. 동네에 거의 다 내려오자 몇몇 아저씨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산속을 뒤지고 있었다. 같이 10여 분 뒤졌지만 못 찾았다. 


그때 문어 아저씨 아랫집에 사는 날라리 형님이 문어 아저씨의 치매를 의심하며 아무래도 지갑이 집에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문어 아저씨는 50대 초반부터 머리털이 빠지기 시작해 60대 중반을 엊그제 넘긴 지금은 거의 사막화 최종 단계에 와 있는 수준이었다. 머리가 그렇다고 치매를 걱정할 상태는 사실 아니었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 총기가 더 뛰어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것 같애’ 하면서 우르르 문어 아저씨 집으로 몰려갔다.


온 집안을 뒤졌다. 대여섯 명이나 되는 남정네들이 남의 집 침대 밑을 살피고, 옷이란 옷은 죄다 주머니를 뒤졌다. 날라리 형님은 주인아주머니가 입고 벗어 놓은 꽃무늬 빤스가 담긴 빨래통까지 뒤적거렸다. 그렇지만 지갑은 없었다.


나는 문어 아저씨에게 산에 가기 전에 어디 갔었냐고 물어보았다. 아랫집에 커피 마시러 잠깐 갔다고 했다. 얼른 아랫집으로 내려가 거실과 마당을 훑었다. 없었다. 다시 문어 아저씨 집으로 갔다. 그 사이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하려는 순간, 늘 실속 제로인 일만 벌인다 해서 별명이 허당인 남 머시기 형님이 집에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면 꼭대기 아니면 흘릴 데가 없는데 제대로 찾아봤냐며 나를 째려보았다. 그러더니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했다. 


“다시 올라가서 제대로 찾아봐, 거기 있을 거야.”

'아, 저 형님, 또 허당끼 작렬이네...'


다리에 힘이 풀려 후들거리는데 다시 꼭대기까지 올라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어쩌랴! 주위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동조를 했으니 다시 올라가야 할 판이었다.


‘제기럴!’


나는 인상을 쓰면서 문어 아저씨의 반들반들한 이마를 째려보며 아랫집 말고 또 간 곳이 없냐고 추궁하듯 물었다. 겨울이라 주인은 오지 않고 개만 있는 앞집에 가서 몽이(개 이름)에게 밥을 줬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얼른 앞집으로 뛰어갔다.


마당에 들어서자 저만치 밤색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떨어지면서 한 번 뒹굴었는지 흙이 조금 묻어 있었다. 주워 열어보니 만 원짜리가 빽빽이 꽂혀 있었다. 


오호! 


얼른 안 호주머니에 넣고 재빨리 산속으로 뛰어가 몸을 숨겼다. 그 사이 사람들은 점심을 어떻게 하냐고 다시 티격태격하더니 어느 집으로 몰려가는 눈치였다. 


'잉? 나 혼자 꼭대기에 올라가라 해 놓고? 저런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잠시 뒤, 숲 속에 몸을 숨긴 채 문어 아저씨에게 숨을 헐떡거리며 전화를 걸었다. 다시 꼭대기로 올라가는 중인데 찾아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지갑에 든 돈의 반을 주겠다고 했다.


‘그랴?’ 



그 길로 숲에서 뛰어나와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가 지갑을 내놓았다. 그렇게 해서 거금 15만 원이 내 손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카톡 열어놓고 관망한 보람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직간접적으로 지갑 분실 소동에 참여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배우자들까지 모두 4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면사무소 옆 용궁 횟집으로 향했다.


‘야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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