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사람의 행복하고 안전한 공존
내가 사는 동네는 전형적인 전원주택 단지다. 차가 다니는 큰 도로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어 무척 조용하다. 단지 뒤로는 통하는 길도 없어 길을 잘못 든 경우를 제외하면 외부인들이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없다. 그러다 보니 문을 잠그지 않고 며칠 집을 비워도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야트막한 야산 자락을 개발해 집터로 만든 곳이라 멀리 용문산과 추읍산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아주 조금이지만 남한강도 내려다보여 전원 주택지로서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곳이다.
입지가 좋아서 그런지 동네 분위기도 참 좋다. 모두 외지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온 사람들이라 텃세를 부리는 사람도 없다. 주말이면 이 집 저 집 몰려다니며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늦은 밤까지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그럴 때면 전원생활의 진수를 맛보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말 그대로 이웃사촌처럼 재미있게 살고 있는 곳이 우리 동네다.
그런데 얼마 전 마을 중간에 있는 이웃한 두 집이 큰 소리로 싸우는 일이 벌어졌다. 두 집 모두 얌전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라 싸울 일이 없었는데도 큰 소리가 오갔다니 무척 궁금했다. 내막을 들어보니 개 때문에 싸운 것 같았다. 그제야 언젠가 동네 한가운데에서 집을 짓던 나이 든 목수의 말이 말이 생각났다.
오며 가며 낯이 익은 그 목수에게 인사를 했더니 동네가 참 좋다며 덕담을 했다. 그러다가 전원주택 지으러 다닌 지 30년이 넘었다는 그 목수는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이 딱 좋은데, 앞으로 집이 더 들어서면 막 싸웁니다. 근데 사람 때문에는 안 싸워요. 개 때문에 싸우지."
그때만 해도 그 목수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웃한 두 집이 개 때문에 싸웠다고 하자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오직 개를 키우고 싶어 전원주택을 지어왔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요즘의 개는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사실 전원주택과 개는 참 잘 어울린다. 전원주택 마당에서 뛰어노는 개는 그 자체로 넉넉한 풍경이기도 하다. 문제는 유난히 사나운 개를 키운다거나, 밤이고 낮이고 사람만 보면 짖어 대는 바람에 옆집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 동네에도 가구 수가 늘면서 개 때문에 이런저런 갈등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앞서 말한 목수의 말처럼, 개 아니면 이웃 간에 얼굴 붉힐 일이라곤 전혀 없다. 오직 개 때문에 이웃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보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개란 집을 지키고, 주인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존재다. 자연히 낯선 사람을 보고 짖는 것은 개의 고유한 업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개가 짖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기는 그렇다. 다만 개가 다른 사람을 향해 사납게 짖을 때, 그 자리에 그 개의 주인이 있는 경우라면 적절히 제지를 하거나, 개 짖는 소리에 놀란 사람에게 적어도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한다. 그 정도만 해도 개로 인한 갈등이 이웃 간의 다툼으로 증폭되지는 않는다.
유아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 간단한 논리가 현장에서 잘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까닭은 자신의 개는 너무 순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개가 다른 사람을 향해 사납게 짖거나, 때로 위협적으로 행동해도 적절하게 제어하지 않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바로 그 순간, 개로 인한 갈등이 사람에게로 옮겨가게 된다.
그런 나쁜 감정이 개에게서 사람에게로 이종전이가 되면 그 불쾌감과 분노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개로 인한 사람 사이의 갈등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것을 막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내게는 한 없이 사랑스럽고, 귀엽고, 순한 개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불쾌하고, 더럽고, 위협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개가 객관적으로 앙증맞고 귀엽다 할지라도. 이것이 성숙한 어른이 취할 행동이다.
어린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면 다른 사람들도 다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유아틱 한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교육과 사회생활, 물리적 나이 듦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 발전하게 된다. '내게는 좋은 것이지만 다른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구나', '나는 싫어하지만 다른 사람은 좋아할 수도 있게구나'라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성장이고 성숙이다. 어른이 가져야 할 생각이기도 하다.
개만 아니면 특별한 갈등 없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 오직 개 때문에 반목하고, 급기야 대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무척 착잡해진다. 안타까운 것이, 개 때문에 생긴 갈등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갈등보다 봉합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다. 애견 문화가 좀 더 자리 잡고 나면 이런 문제도 조금씩 수그러들겠지만 한창 애견 문화가 확장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문제는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면에서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예비 전원 생활자들은 마음을 조금 다잡을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